한국일보>

이왕구 기자

등록 : 2017.12.07 19:00
수정 : 2017.12.09 00:11

[지구촌은 선거 중] 룰라냐, 브라질의 트럼프냐

내년 10월 7일 대선… 지지율 선두 룰라 뇌물죄 확정 땐 판세 달라져

등록 : 2017.12.07 19:00
수정 : 2017.12.09 00:11

국민 21% “투표 불참” 정치 외면 속

경제 호황 향수 룰라 압도적 우위

1심 9년 6개월형… 항소심에 촉각

극우 보우소나루 SNS 분열ㆍ선동에

“흉악범 무관용” 두테르테도 닮아

좌파의 대안 여성후보에는 앞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 AP 연합뉴스

2014년 이래 계속되고 있는 연방검찰의 정치인 부패수사, 부정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2016년), 미셰우 테메르 현 대통령의 수뢰혐의 기소와 탄핵위기(2017년 6월).

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이 맞닥뜨리고 있는 정치 현실이다. 경상수지 적자ㆍ내수 악화ㆍ연방부채 급증 등 2012년 이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위기도 브라질 국민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18년은 브라질의 진로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해로 꼽히고 있다. 10월 7일 대통령 선거(및 주지사, 연방 상ㆍ하원, 주의원 선거, 결선투표는 10월28일)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 부패 탓에 국민 21%가 내년 투표에 불참하겠다는 냉소주의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브라질이 재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목소리다.

룰라 시대 향수인가…브라질판 트럼프인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리더십 부재’는 10개월 이상 남은 대선 레이스를 일찍부터 가열시키고 있다. 탄핵된 호세프 정권(노동당ㆍPTㆍ좌파)을 대신해 등장한 현 테메르 행정부(우파연정)의 지지도가 5%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유력 주자들은 이미 등판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선두주자는 노동당 후보로 확실시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2) 전 대통령. 연초부터 대선 출마를 시사하는 등 정치행보를 시작했고 지난 9월부터 전국을 돌며 사실상 대선유세를 시작했다. 10월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도 28~43%로 압도적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아예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해 일찌감치 승세를 굳히겠다는 게 룰라 측 전략이다.

그는 재집권 시 테메르 정권의 정책을 되돌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중남미 굴지의 국영전력회사 엘레트로브라스 등이 포함된 테메르 정권의 민영화 정책을 되돌리고 교육과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공약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소규모 자영농 보호, 보우사 파밀리아(소득이전 프로그램)강화 등 전통적 노동당 정책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퇴임 당시 기록적인 지지율(83%)을 달성했던 룰라는 브라질 경제의 최대호황기였던 재임 시(2003~2011년)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전통 지지층(도시빈민ㆍ노동자ㆍ영세자영농)의 열성적인 뒷받침을 무기로 재집권을 노리고 있다. 다만 노동당이 최근 선거인 2016년 지방선거에서 1980년 이래 최대 규모로 참패(27개 주지사 중 1명 당선)하는 등 낮은 정당 지지도가 약점이다. 룰라 역시 좌파진영의 약화를 인정하면서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행보를 다짐하고 있다.

우파 연정이 뚜렷한 주자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반(反) 룰라 진영에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62) 연방하원의원의 급부상이 초미의 관심사다. 극우 정당인 기독교사회당(PSC) 소속인 보우소나루는 10월 이후 여론조사에서 15~25%로, 2위 자리를 유지하며 룰라를 추격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결선 투표가 치러질 경우 룰라와 맞대결이 예상된다.

육군 대령 출신으로 1989년 리우 데 자네이루 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한 그는 “브라질을 지키는 군인”을 자처하는 극우 포퓰리스트다. 보우소나루는 최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군부독재기간 좌파정치인들을 고문, 법정에까지 섰던 정보기관 수장을 “영웅”이라고 칭송했으며, 총기규제 완화, 흉악범에 대한 경찰의 무관용 진압 등을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성소수자, 여성, 아프리카계 브라질인, 중국의 브라질 투자 등에 비난을 퍼붓는 등 분열전략도 서슴지 않고 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부정부패와 상관없는 정치인”이라며 경제불황에 지치고 정치혐오에 빠진 중산층, 남성(지지자 66%가 남성)들을 선동하고 있다. FT는 사회불안의 원인을 60% 이상 사회적 소수자 탓으로 지목하는 최근 브라질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보우소나루를 “트럼프와 두테르테를 혼합한 것 같은 인물”이라고 평했다.

룰라 대통령 재판 결과 따라 판세 요동

대선레이스를 흔들 수 있는 가장 큰 변수는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룰라의 재판 결과다. 룰라는 지난 6월 뇌물수수와 돈세탁 등 혐의로 연방법원에서 9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룰라는 ‘정치 재판’이라며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1심 형량의 2배(19년) 기간 공직에 취임할 수 없어 대선 출마는 좌절된다.

룰라가 대선에 출마하지 못할 경우 좌파진영의 대안으로는 룰라 행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역임, ‘아마존의 여전사’로 불리는 마리나 시우바(59ㆍ지속가능네트워크ㆍREDE) 전 연방상원의원이 첫손가락으로 꼽힌다. 지난 2010년 대선에 출마, 20% 지지를 받는 등 안정적 득표력을 갖추고 있으나, 우파 후보를 압도할 만한 경쟁력이 없다는 점, 탄핵된 호세프 대통령의 실정(失政)으로 인한 여성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난 점 등이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다타폴랴 여론조사에서 룰라 없는 대선을 치를 경우 시우바는 16%를 득표, 보우소나루(20%)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메르 대통령이 속한 브라질민주운동당(PSDB), 브라질사회민주당(PSDB) 등 우파 연정이 극우파인 보우소나루와 거리를 두고 있는 가운데 우파 진영 후보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브라질사회운동당 소속 제라우두 아우키민(65) 상파울루지사는 룰라에 결선에서 패배했던 2006년에 이어 다시 대선에 도전한다. 일찌감치 고향 핀다몬항고바 시장에 도전, 25세에 최연소로 당선됐던 관록의 정치인으로 재계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반(反)룰라’기치를 걸고 아우키민 주지사와 같은 당 후보 자리를 경합하고 있는 주앙 도리아(59) 상파울루 시장도 주목받는 주자다. 홍보 전문기업 경영자 출신으로 SNS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기존 노동당 지지자들을 끌어들이는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정치인이다.

김영철 부산외국어대 중남미학부(포르투갈어 전공)교수는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척결, 테메르 정부가 추진한 우파 개혁 지속 여부, 파편ㆍ분절화된 브라질 사회 통합 능력 등이 이번 브라질 대선의 쟁점이 될 것”이라며 “2심 재판 결과 룰라가 혐의를 못벗어 대선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한다면 좌파로서는 정권 탈환이 쉽지 않은 선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희문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브라질 변호사)는 “룰라가 고정표가 많지만 노동당 역시 부패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브라질 국민은 기성 정치인과 다른 참신한 인물을 원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자이르 보우소나루 하원의원.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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