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반출량, 시간 지날수록 증가세
흡연자들 "가격 부담에도 못 끊어"
세금은 작년보다 8800억원 더 걷혀
정부 금연정책 입지 갈수록 줄어
대기업 직장인 김광호(35)씨가 올 초 세웠던 금연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1월 1일부터 값이 2,000원 오른다는 뉴스를 보고 금연하기로 했지만, 고된 업무와 스트레스를 견디다 저절로 손이 담배에 닿았다. 김씨는 “두 배 가까이 오른 담뱃값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미 그 가격에 익숙해졌다”며 “줄여서 피우는 한이 있어도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더는 들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일용직 근로자 김모(48)씨는 담뱃값 인상이 누구보다 부담스러운 처지이지만 아직 담배 끊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월 60만원가량 임금을 받는다는 김씨는 담뱃값으로 한 달에 5만~6만원가량 지출하지만 식비를 아껴서라도 담배는 피우겠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건강에 이상 신호가 없는 한 값이 올랐다고 담배를 쉽게 끊을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한 지 6개월째 접어 들면서 가격인상 효과가 확연히 감소하고 있다. 예상보다 담배 반출량(공장ㆍ창고에서 담배가 반출되는 수량) 감소폭은 크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판매량이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담배 반출량은 담뱃값 인상 직후인 올해 1월 1억7,000만갑, 2월 1억7,900만갑 수준을 유지하다가 3월 2억4,300만갑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4~5월에도 각각 2억9,100만갑과 2억6,900만갑을 기록하며 증가세가 여전했다. 지난해 11월과 12월 반출량이 각각 3억7,400만갑, 2억9,500만갑이었으니 상당 부분 예년의 판매치로 회복해 가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작년 말 담뱃세 인상에 대비해 소비자들이 사재기해뒀던 담배가 떨어진 탓”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당초 “판매량이 34%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 것과 달리 작년 대비 1~5월의 담배 반출량은 약 30% 감소한 것에 그쳤다.
단순 가격 인상만으론 금연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담뱃값 인상 반대진영의 논리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부가 지난 5월까지 담배 판매로 거둔 세금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800억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추세라면 예상했던 2조8,000억원가량의 세금을 걷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건강 증진을 명목으로 내세운 ‘꼼수 증세’라는 비판에 대해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라고 반박했던 정부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형국이다.
담뱃값 인상이 세수확보에 용이하지만 금연정책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연 공청회에서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담배의 경우 가격뿐만 아니라 관련 규제나 담배의 해악에 대한 정보와 교육 등 비가격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가격인상만이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금연 문화 확산을 위해 비가격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말 정부 주도로 담뱃갑에 경고그림 표기를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13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긴 했지만, 흡연 예방교육이나 청소년 금연정책 등에선 아직 성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담뱃값 인상은 저소득층 흡연자에게 세부담만 안겨줄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금연예산을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에 활용하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올해 금연정책 예산이 10배 이상 늘어난 만큼 비가격 정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달 말 전국 255개 보건소의 금연클리닉 실적 등을 통해 ‘담뱃값 인상 이후 6개월 간 금연 현황’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