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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동생이라는 이유로 지원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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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동생이라는 이유로 지원 배제

입력
2018.04.04 16:5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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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이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4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이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2011년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최고상(황금곰상) 수상자이자 유명 설치미술가인 박찬경 감독은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예술영화 지원사업에 응모했으나 지원 배제 대상에 올랐다. 당시 야권 지지자였던 박찬욱(영화 ‘올드보이’와 ‘아가씨’ 등) 감독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청와대에서 지원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영진위는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정부에서 영진위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 기관 노릇을 한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과 영화계에 공식 사과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산하 기관이 블랙리스트 문제로 공식 사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석근 영진위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진위는 지난 두 정부에서 관계 당국의 지시를 받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차별과 배제를 직접 실행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며 “통렬하게 반성하고 준엄하게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공식 사과에 앞서 지난주 블랙리스트 피해 영화인들에게 직접 전화로 사과했다.

영진위가 감사원 기관운영감사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 재판 판결,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중간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자체 파악한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56건에 달한다.

박찬경 감독뿐 아니라 2012년 ‘지슬’로 선댄스영화제 극영화경쟁부문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오멸 감독도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입었다. 오 감독의 ‘바당 감수광’은 제주 4ㆍ3사건 소재 ‘지슬’을 연출한 감독이라는 이유로, 이송희일 감독의 ‘연인들’은 ‘다이빙벨’ 제작사의 영화라는 이유로 청와대로부터 지원 배제 지시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KT 노동자, 밀양송전탑, 제주강정해군기지, 간첩조작사건, 국가보안법, 일본군 위안부, 성소수자, 재일조선인, 일제고사 등 시국사건과 진보적 이슈를 다룬 영화들은 ‘문제영화’로 분류돼 제작지원 및 개봉지원 선정 과정에서 배제됐다. 최승호 MBC 사장이 해직 시절 대안언론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자백’과, 2011년 7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은 ‘두 개의 문’의 후속작 ‘공동정범’ 등이 포함됐다. 중복 사례를 제외하면 총 17개 작품이다.

‘천안함 프로젝트’와 ‘다이빙벨’ 등 정부 비판적인 영화를 상영한 예술영화전용관ㆍ독립영화전용관은 심사 방식을 바꿔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켰고,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절반으로 삭감했다.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영진위 내부 직원을 별도 관리해 불이익을 준 사례도 있었다.

당시 청와대가 특정 영화인 지원 배제 지침을 관계 당국을 통해 영진위에 하달하면 영진위가 심사위원 구성과 심사과정에 내밀하게 개입해 해당 영화와 영화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블랙리스트가 실행됐다.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실행된 사실도 확인됐다. 2008년 8월 당시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주도한 ‘문화권력 균형화전략’에 따라 영진위는 2009년과 2011년 촛불집회 참여 단체들을 단체 지원사업에서 배제했고, 2010년에는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위탁사업을 지정위탁에서 공모제로 전환해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인디포럼 작가회의 등을 탈락시켰다.

영진위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향후 ‘영진위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에서도 문체부 조사 결과와 연계한 후속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추가 신고와 제보도 받는다.

아울러 영진위는 1일자로 사무국 직제를 개편하고 인사를 단행했다. 본부장 4명을 연차 20년 미만의 젊고 능력 있는 직원으로 선임하고 팀장급은 10년차 직원들로 꾸렸다. 여성 보직자들도 전면 배치됐다. 지난 두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에 관여한 정황이 있는 직원들을 정리하는 인적 쇄신 의미도 있는 인사라는 게 영진위의 설명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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