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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다르면 단호히 '절연' …朴대통령-측근 '애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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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다르면 단호히 '절연' …朴대통령-측근 '애증사'

입력
2015.06.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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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과 애증 교차…진 영 강재섭 등도 거리 멀어져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최측근이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해 "배신의 정치"라며 사실상 자진사퇴를 요구함에 따라 박 대통령과 다른 측근 인사와의 '애증사'(愛憎史)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친의 서거후 측근들의 배신을 지켜본 박 대통령은 어떤 정치인보다도 깊은 '배신의 트라우마'가 있고, 그 점때문에 누구보다 '신의와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철학을 가지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2007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상대의 믿음과 신의를 한번 배신하고 나면 그다음 배신은 더 쉬워지며 결국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평생 살아가게 된다"라며 '변절'에 대한 단호한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이른바 '측근'이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행보를 하거 나 '자기 정치를 한다'는 판단을 할 경우에는 엄격한 입장을 취해왔고, 정치적으로 절연한 경우도 있었다.

박 대통령과 가장 대표적으로 애증 관계에 있는 인물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박 대통령은 당 대표였던 2005년 당시 김무성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발탁하면서 두 사람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김 대표는 2007년 대선 후보경선 때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밀렸지만 끝까지 실무를 총괄했고, 2008년 18대 총선 '보복 공천' 과정에서 희생됐다.

이후 '친박(친박근혜)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친박 좌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김 대표는 '로키' 행보를 하던 박 대통령과 달리 계파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면서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이어 박 대통령이 김 대표의 원내대표 출마에 반대하고 김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박 대통령과 다른 입장을 내면서 박 대통령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는 말까지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됐다.

친이(친이명박)계의 추대로 2010년 원내대표를 맡은 김 대표는 친박계가 사실상 주도한 2012년 공천 때 다시 낙천했다가 그해 대선에서 선거대책위원회 총괄 선대본부장을 맡아 백의종군하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이어 지난해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를 요구하고 같은 해 10월에서는 개헌론을 꺼내놓으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도 불편해졌으나 박 대통령이 지난해 4월 해외 순방 전 김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어수선한 상황을 수습할 것을 당부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복원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유 원내대표가 버티기를 하면서 이 문제를 수습해야하는 김 대표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박 대통령의 대표 시절 역시 비서실장을 맡았던 진영 의원도 박 대통령과 애증 이 교차해온 정치인이다.

2004~2005년 비서실장을 맡는 등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였던 그는 2012년 박 대통령이 반대한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으나 대통령직 인수위에 부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신임을 재확인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초 박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신임을 받는 위치로까지 부상했다.

그러나 2013년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각에 합류한 그는 그해 9월 기초연금 축소 등 '복지 공약 후퇴'에 불만을 품고 일방적으로 사표를 제출하는 이른바 '인사 파동'을 일으키고 당으로 복귀했다.

박 대통령과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관계도 애증사의 한 대목.

강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1998년 재보선시 대구 달성 출마에 관여하고 달성 지역 선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의 원내 진입에 기여했다.

박 대통령이 대표였던 2005년에 강 전 대표는 원내대표로 사학법 투쟁을 지휘했으며 이후 강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물밑 지원 속에서 당 대표가 됐다.

그러나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균형 행보를 한다는 이유로 "MB(이명박 전 대통령)쪽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며 친박 진영으로부터 원망을 받았다.

이어 2008년 이른바 '보복 공천'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며 당 공천을 정면 비판하고 이로 인해 강 전 대표도 결국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대립하게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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