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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무형문화재 되는 '온돌'

입력
2018.03.18 16: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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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풍경, 음식, 사람들은 잊혀진 듯해도 어느날 문득 일상에서 반짝거린다. 그래서 우리는 불현듯 눈시울이 붉어지고, 된장찌개를 먹겠다며 메뉴판을 뒤적거리다가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곤 한다. 기억은 단지 두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피부와 손 등 몸 곳곳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에는 개별성과 집단적 성격이 함께 한다. 우리가 개인적 추억과 경험으로 돌리는 여러 가지 것들이 사실은 그 사회의 집단적 경험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 또는 전통이라고 부른다.

이 점에서 온돌은 우리 문화와 경험의 물질적 토대라고 말할 수 있다. 아파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택 난방이 온돌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온돌은 우리에게 난방 시스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어떤 구청에서 겨울철 불우이웃 돕기 행사에 ‘온돌’이란 낱말을 사용했듯이, 이 단어는 따뜻함과 연대감을 떠올리게 한다. 맑은 어느 겨울날 누군가는 겨울방학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온돌방 문턱에 기대어 외양간의 황소가 되새김질하는 걸 구경하던 추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누군가는 온돌방에서 친구들과 빈둥거리며 만화를 돌려보며 오후 시간을 보내던 광경을 기억하고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이렇듯 난방 시스템인 온돌은 물질적으론 개인적 공간인 ‘집’에 제한되지만, 그와 동시에 경험의 공유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지난 16일 문화재청은 ‘온돌문화’를 새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설명에 따르면, 온돌문화는 우리 민족이 한반도 기후 환경에 지혜롭게 대응하고 대처해 온 창의성을 보여주고, 중국 만주 지방의 바닥 난방과 구별되는 고유한 주거 생활상을 담고 있어 문화유산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이렇듯 문화재청이 온돌을 ‘문화’로 평가한 것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것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점을 정확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또한 ‘김치 담그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에서 짐작되듯이, 그것은 우리 민족의 연대의식을 표현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온돌이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론 그것이 상징하는 어떤 경험과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 온돌에서 경험한 종류의, 유대감과 연대의식이 옅어지는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들은 카카오톡, 라인, 텔레그램,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인터넷의 댓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더 이상 아이들이 온돌방에 누워 빈둥거릴 겨울방학은 없다. 온돌방에서 만화를 돌려 볼 친구들은 학원을 전전하며 하루를 보낸다. 물론 온돌 등과 같이 연대감 형성을 위한 물질적 기초가 줄어든다고 해서 연대의식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터넷에서 새로운 터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날로그적 감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때때로 온돌방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전통적인 온돌 시스템을 체험하는 기회를 갖는 건 쉽지 않다. 한옥과 같이 아궁이를 갖추고 방 안팎의 공기가 순환되는 구조를 가진 집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주택의 난방과 단열 시스템이 잘 갖춰진 건 좋은 일이지만, 따뜻한 바닥과 시원한 기운이 함께 하는 온돌방에서 이불 속에 몸을 집어넣고 소일하는 즐거움이 사라진 건 아쉽다. 이제 그런 경험은 지방의 고택(古宅)에 가거나 공공기관에 의해 조성된 한옥마을에 가야 누릴 수 있다. 그래도 예약을 하는 약간의 수고를 감수한다면, 온돌방을 즐길 수 있으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굳이 고택이나 한옥마을에 가지 않더라도,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과거 온돌이 상징하던 유대감과 연대의식을 다른 방식으로 공유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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