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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문인·석학 한자리에/ 26~28일 '2000 서울 국제문학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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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문인·석학 한자리에/ 26~28일 '2000 서울 국제문학 포럼

입력
2000.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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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지구촌의 시선은 15일부터 보름 남짓 동안 올림픽이 열리는 남반구의 도시 시드니로 쏠리게 된다.그러나 눈길의 일부는 시드니와 한 시간의 시차가 있는 서울로도 끌릴 것이다.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일종의 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이다.

시드니 올림픽이 육체의 올림픽이라면 서울의 올림픽은 정신의 올림픽, 마음의 올림픽이다.

시드니의 육체 올림픽이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는 구호 아래 나라별로 더 많은 메달을 얻기 위해 벌이는 민족주의의 잔치라면, 서울의 정신 올림픽은 '경계를 넘어 글쓰기: 다문화 세계 속에서의 문학' 이라는 표어 아래 다양성 속의 연대와 우애를 추구하는 국제주의의 한마당이 될 것이다.

시드니에 모일 체육인들이 일차적으로 조국애로 단련돼 있다면, 서울에 모일 문화인들은 일차적으로 인류애로 충만돼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열릴 정신 올림픽의 이름은 '2000 서울 국제문학 포럼'이다.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될 이 잔치에는 전세계의 저명한 문인과 학자 열 아홉 사람이 국내의 작가.학자들과 합류한다.

참석자 면면을 보면 세기적 전환기의 비판적 사회과학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86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이지리아의 극작가 월레 소잉카, 문학과 철학과 사회과학을 넘나들며 혜안을 뽐내온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선불교와 생태주의를 아메리카 시단의 한 흐름으로 만든 미국의 시인 개리 스나이더, 현대 시학의 엄밀성을 한 단계 높인 프랑스의 시인 겸 수학자 자크 루보, 미국의 아시아 문학 연구를 대표하는 평론가 일레인 킴, 소설가와 극작가와 배우를 겸하며 현대 영국 문단을 이끌어온 마거릿 드래블 등 자못 '영예의 전당'을 이룰 만하다.

이들과 함께 담론의 맥놀이를 만들어낼 국내의 인사들도 시인 고은 김종길 정현종 김지하 황동규 황지우씨, 소설가 서정인 이청준 김원일 황석영 이문열 최윤씨, 평론가 김우창 유종호 도정일 김성곤 성민엽 정과리씨, 정치학자 최장집씨 등 한국의 문단과 지성계를 대표할만한 얼굴들이다.

이 문학포럼은 규모에서나 참석자에서나 국내에서 열린 국제 문화행사 가운데 최고, 최대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배경이 폭넓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의 국제 문화행사가 대체로 미국 문화에 큰 비중을 두고 이루어졌다면, 이 포럼에는 제3세계와 동아시아와 동유럽을 문화적 배경으로 삼은 인사들이 여럿 참가한다.

중국의 평론가 왕휘와 장이우, 칠레의 소설가 폴리 델라노, 알바니아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 이마스일 카다레가 도드라진 예다.

●서울 국제 문학 포럼 일정

포럼은 '경계를 넘어 글쓰기: 다문화 세계 속에서의 문학' 이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열 네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26일에는 '세계화와 문학'(발제자 월레 소잉카, 유종호), '작가와 글쓰기: 시'(자크 루보, 정현종, 황동규), '자연, 시, 동아시아 전통'(개리 스나이더, 김종길)의 세 세션이 열린다.

27일에는 '세계 시장 경제 체제 속에서의 글쓰기'(피에르 부르디외, 김우창), '작가와 세계시장'(파스칼 카자노바, 왕후이), '대중 문화 사회의 시인'(우베 콜베, 황지우), '분쟁 속의 작가 I'(이스마일 카다레, 김원일), '분쟁 속의 작가 II'(일레인 킴, 황석영), '전환기의 글쓰기 I' (폴리 델라노, 이문열)의 여섯 세션이 진행된다.

28일에는 '포스트식민지적 상황에서의 글쓰기'(마거릿 드래블, 박완서), '작가와 글쓰기: 소설'(라파엘 콩피앙, 서정인), '전환기의 글쓰기 II'(가라타니 고진), '비(非)서구 세계에서의 글쓰기 I'(한스 부흐, 김성곤), '비서구 세계에서의 글쓰기 II'(마사오 미요시, 장이우, 도정일)의 다섯 세션이 열린다.

외국에서 온 작가들은 포럼 외에 대학이나 교보문고에서 강연회를 열어 독자들과 숨결을 나눌 예정이다. 천년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모색은 서울에서 시동이 걸릴 듯하다. 그들의 약력과 발표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 피에르 부르디외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1930년 프랑스 남부 베아른에서 태어나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콜레주 드 프랑스와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학교 교수를 겸하고 있다. 사르트르와 푸코의 맥락을 잇는 프랑스의 대표적 참여 지식인이다. '재생산' '구별짓기' '예술의 규칙' '텔레비전에 대하여' 등의 책을 썼다.

"거대 스펙터클 영화든 특수효과 영화든 또는 '월드 픽션' 영화든, 감독이 이탈리아인이든 인도인이든 영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상업적 '세계화'의 키치 생산물들은 '문학적.예술적.영화적 인터내셔널'의 생산물들과 모든 점에서 대립된다. 이런 인터내셔널의 중심은 도처에 있을 수도 있고 아무 데도 없을 수도 있다. 비록 아일랜드, 미국, 체코 그리고 폴란드 출신이지만 파리에서 빚어진 조이스, 베케트, 포크너, 카프카, 곰브로비치 같은 작가들이나, 헐리우드 미학이 무시하는 카우리스마키,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사티아짓 레이, 키에슬로브스키, 키아로스타미 같은 이 시대의 영화작가들은 예술적 국제주의라는 국제적 전통이 없었다면, 더 정확히 말해서 조예가 깊은 생산자들과 비평가들과 수용자들의 소우주가 없었다면, 존재하지도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업주의의 침공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국제주의이고, 이런 특정한 문화적 국제주의의 전통은, 겉보기와는 달리, 우리가 '글로벌리제이션'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발제문 '문화는 위기에 처해 있다' 중에서)

▥ 개리 스나이더

시인 개리 스나이더는 1930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리드 대학에서 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했다. 1960년대에 일본에서 생활하며 선불교에 심취했고, 그 뒤 자연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데이비스 대학 교수로 있다. 1974년 시집 '터틀 아일런드'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다른 시집으로 '빗속에 남겨져' '끝없는 산하'가 있다.

"걷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곧바로 사막을 건너질러 가는 것에서부터 숲을 통해 구불구불 길을 찾아가는 것에 이르기까지. 바위능선과 급경사면을 타고 내리는 것은 그것 자체로 특수한 기술이다. 무너져 내리는 경사면을 계속 옮겨 딛는 일은 일종의 불규칙한 춤이다. 호흡과 눈은 계속하여 이 불규칙한 리듬을 따른다. 이 동작은 빤히 보이는 지점을 향하여 바위에 발을 걸치려고 임기응변적으로 뛰어넘고 옆걸음질치며 계속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계산적으로 전진하는 동작이다. 긴장하는 눈은 앞을 내다보며 앞으로 밟을 디딤점을 선택하면서, 그 순간의 스텝을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다." (발제문 '산중(山中)에 숨은 산들' 중에서)

▥ 이스마일 카다레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는 1936년 알바니아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오래 인민회의 의원으로 활동했다. 1990년에 프랑스로 정치적 망명을 했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도뇌르 상을 받았다. 작품으로 '부서진 4월' '죽은 군대의 장군' 등이 있다.

"문학의 캘린더는 삶의 캘린더와 다르다. 문학은 자기 고유의 캘린더를 따를 뿐 삶의 캘린더를 모른다. 문학은 삶의 캘린더를 상대적 방식으로 알 뿐이다. 삶의 중요한 사건들이 문학이 보기에는 시시한 것일 수도 있다. 삶에서는, 예컨대 프랑스 대혁명처럼, 거대한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거대한 사건들이 문학에 그만큼 거대한 규모로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반면에, 살인 등의 범죄처럼, 문학에서 윤곽을 드러내는 혐오스러운 사건들이 있다. 이런 범죄들은 무용한 일이지만, 문학은 이런 살인이나 부정적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는 인류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이루는 사건은 단순하다. 맥베스가 스코틀랜드 왕 던컨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죽인다는 얘기다. 이런 평범한 사건이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만한 걸작을 낳았다." ('발제문 '문학과 삶의 모호한 관계' 중에서)

▥ 자크 루보

자크 루보는 시인이자 수학자다. 1932년 프랑스 칼뤼르 출생으로, 시에서 에세이와 희곡을 거쳐 문학 이론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전 장르에 조예가 깊다. 1968년에 페네옹상과 프랑스 문화상을, 1989년에 시(詩) 부문 국가대상을 수상했다. 바둑 실력이 뛰어나다. 시집 '어떤 도시의 모습', 에세이 '알렉상드르의 노년', 소설 '잃어버린 마지막 공' 등을 썼다.

"시는 그것이 당신의 내적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그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시인에 의하여 지어져서 시를 나타내는 하나의 시편이라는 저 외적 기억의 한 조각으로 변하기 이전에는, 요컨대 시인이 그 자신의 독자가 되기 이전에는, 시는 시인의 내적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는 당신의 기억으로부터 오지만,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을 밟아 또다른 어떤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시에서,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것을 마음대로 통솔할 수가 없다. 당신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시의 기억 속에서 어떤 시편의 기억이 자아내는 효과가 어떤 것이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지어놓고 나면 한 편의 시는 만인의 것이다. 그 시편은 이제 더 이상 시를 지은 시인의 배타적 소유가 아니다." (발제문 '시와 시를 짓는 사람의 여러가지 문제' 중에서)

▥ 일레인 킴

평론가 일레인 킴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펜실베이니아, 컬럼비아 대학에서 가르쳤고, 현재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교수로 있다. 아시아 문학과 구미 문학의 비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저서로 '아시아계 미국문학' '파도 만들기' 등이 있다.

"유색 인종에게 '인종'이란 '생존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사이의 친근성은 공통적으로 경험한 배반과 고통의 경험에서, 그들이 경험하고 목격한 것에 대한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인종 분열의 장벽을 무너뜨리려는 투쟁에서 온 것이다. 미국의 국가적 담론은 필리핀 한국 베트남에서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식민화를 저질렀다는 사실이나, 미국이 중앙 아메리카 모든 나라의 경제와 문화를 지배하려 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제국의 중심으로 돌아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대꾸하며, 인종적 분화와 계급체제에 도전을 하고, 묻혔던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찾아오고, 망령들을 덮고 있던 침묵을 깨고 있다. 그것은 미국이 미국에 대해 만들어낸 허구를 부정하고 불안정하게 한다. 우리는 함께 미국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발제문 '한국계 미국 문학 속의 흑인성과 미국적 정체성' 중에서)

▥ 폴리 델라노

소설가 폴리 델라노는 1936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칠레인이다. 1973년까지 칠레 대학에서 북아메리카 문학을 강의했고, 1984년부터 11년간 아르헨티나, 중국, 미국, 멕시코 등을 떠돌았다. '가면 바꾸기' '병 속의 도마뱀' '화산 꼭대기의 표범' '은둔자들의 피아노바' 등의 작품이 있다.

"'유토피아의 끝'이라고 특징지어진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해왔다. 하지만 내 생각에 유토피아의 끝은 없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의미하지만 그 세계는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내가 살기를 소망하는 장소이자 세계이며, 또한 내 아이들을 위해, 모든 인류를 위해 내가 소망하는 그런 곳이다. 그 유토피아를 위해 투쟁하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소설가 호세 도노소는 글쓰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좋은 대답이다. 아무튼 나는 글쓰기를 피할 수 없어서 글을 쓴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비록 그 말이 더 깊은 이유들을 설명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발제문 '획기적인 전환의 시대에 글쓰기' 중에서)

▥ 가라타니 고진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1941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나 도쿄대에서 경제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은유로서의 건축' '탐구 1, 2',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 있다.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암에 비유했다. 자본주의는 농업 공동체와 봉건 국가 사이의 틈새에서 태어나, 그 내부의 세포들을 침략하여 그 자신의 생리에 따라 그 세포들의 성향을 변형시켰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여전히 기생적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로서의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의 초국적인 연계망은 말하자면 항암성 세포들의 문화이다. 그것을 제거하려면 자본과 국가는 자기 자신들이 생산되는 조건들을 먼저 제거해야만 할 것이다. 내가 읽은 바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이런 문화의 창출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말하자면 (상품과 화폐 사이의) 가치 형태에 내재한 비대칭적인 관계가 자본을 생산하는 것인데, 또한 자본을 종식시킬 수 있는 입장 전환의 계기들이 파악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므로 이런 계기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트랜스크리티시즘의 과제이다. (발제문 '서론: 트랜스크리틱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 마거릿 드래블

소설가 마거릿 드래블은 1939년 영국 셰필드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배우 겸 작가로 활동했고, '폭포' '상아의 문'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아동정신병 기금' '캄보디아 구호기금' 등을 위한 사회활동도 활발하다.

"해리엇 비처 스토우는 1852년에 노예제를 주제로 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샬로트 브론테는 이 소설이 예외적인 상업적 성공과 박애주의를 훌륭히 결합시켰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했다. 그러나 브론테에게는 상업주의나 유행의 유혹에 저항할 용기가 있었다. 브론테는 남들이 그녀에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 중요하게 보이는 것에 대해서 쓸 권리를 주장한 셈이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에게 문학적 유행의 노예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경고한다. 나는 탈식민지적 상황의 작가들이 정직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런 무관심의 시금석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위해 작품을 쓰는 것이 그 자체로 그른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 마치 어떤 고귀한 대의를 위해서 작품을 쓰는 체해서는 안된다." (발제문 '탈식민적 상황에서의 글쓰기' 중에서)

▥ 윌레 소잉카

극작가 월레 소잉카는 1934년 나이지리아 아베오쿠타에서 태어나 영국의 리즈 대학에서 공부했고, 영국 왕립극장에서 일했다. 1960년 극단 마스크스 창단을 시작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1986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늪지대의 사람들' '기억의 짐' 등이 있다. 현재 미국 에모리 대학 교수로 있다.

"정전(正典)들은, 우리가 알다시피, 시간의 흐름을 이겨낼 것으로 기대된다. 정전들은 실로, 좋은 포도주처럼, 세월이 지남에 따라 더 가치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그런 정전들은 공인된 거장들의 텍스트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규범적 권위주의의 캐털로그에서나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문학 교육의 기반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서방에서의 토론이 더러 학문적 방종의 특권처럼 들리고, 그것이 다른 나라 젊은이들의 기본적 인문 교육이나 문학적 관습과 무관하다는 걸 이해하기 위해 많은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탈리반에 의해서 어떤 텍스트들이 남녀가 읽기에 적당한 것으로 허락되어 있는지를 묘사하거나, 크메르 루즈 치하에서 외국어로 된 텍스트를 갖고 있다가 체포된 캄보디아 지식인들의 운명을 상기하기만 하면 된다. (발제문 '서방의 정전, 동방의 정전' 중에서)

▥ 김우창

김우창씨는 국내의 대표적인 문학 평론가다. 193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있다. '궁핍한 시대의 시인' '지상의 척도' '정치와 삶의 세계' 등의 저서가 있다.

"오늘날의 핵심적인 문제는 인간의 내면을 포함한 삶의 전체성에 대한 관심이 시계로부터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역사나 사회를 전체성 속에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범한 역사적 과오들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전체성의 소멸이 참으로 바람직한 것인지 또는 도대체 가능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우리가 전체성을 말할 때, 그것은 있는 모든 것 또는 만유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전체란 이러한 개방적인 무한을 말한다기보다는 어떠한 관점에서 한정되는 일체성을 말한다. 전체란 철학적 사고에서 개념이나 목적인에 합당한 사실을 말한다. 세계가 우리에게 전체로 파악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에 대응하거나 또는 삶의 어떠한 의미에 대응할 때다. 시장 경제 체제는 목적을 불문에 부치고 욕망과 물질적 수단의 무한한 추구를 가능하게 한다." (발제문 '문학과 세계 시장' 중에서)

▥ 정현종

시인 정현종씨는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시집으로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등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인은 꿈꾸는 사람입니다. 자연을 비롯해서 모든 사물은 시인의 꿈을 촉발합니다. 나무를 예로 든다면, 벌목회사는 나무가 돈으로 보이고 열대림은 다만 엄청난 돈덩어리로 보이겠지만 시인은 나무나 열대림을 보는 순간, 도취와 경탄 속에서, 즉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자연은, 종교나 철학.과학 등 인간이 그럴싸한 목적과 기능을 내세우며 만들어낸 그 어떤 방편보다도 한층 더 뜻깊고 건강하고 유용한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나날이 먹는 음식은 물론 모두 자연에서 온 것이지만, 우리는 음식을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닙니다.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맡는 것, 피부로 접촉하는 것들도 모두 우리의 음식입니다." (발제문 '시--꿈의 생산성을 향하여' 중에서)

▥ 황지우

시인 황지우씨는 195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나는 너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등이 있다.

"세상이 온통 키치판일 때, 삶이 온통 시장 바닥일 때, 그것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희비극일까? 문제는 이와 같은 지식 정보 사회와 대중문화 사회에 포위되어 압박해 들어오는 그 힘들 앞에 저항하거나 유혹받고 독촉받고 버티거나 투항해버리거나 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 작가들이다. 작가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태생적 '신지식인'인지도 모른다. 본디 허구라고 하는 근원적인 사기성 없이 어떻게 한 편의 이야기를 '불신의 자발적 정지'(콜리지)가 일어나도록 끌어갈 수 있겠는가? 또 그들은 사기 한 건 올리면 경우에 따라선 엄청난 부가 가치의 창출자로서 세무서가 갑자기 관심을 표하지 않던가?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는 관심가질 만한 데가 있다. 유혹받는 자들은 그럴 소인이 그들 안에 있다." (발제문 '격류 위의 나뭇잎--모더니티, 대중문화사회, 시' 중에서)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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