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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성장과 구조개혁은 어디로 갔나?

입력
2017.07.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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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고 나면, 그 정권의 핵심가치를 나타내는 단어가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표징과 같았던 ‘창조경제’는 사라지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이 등장했으며, 박근혜 정부의 ‘성장’과 ‘구조개혁’은 잊혀지고, 대신 ‘일자리’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출세(?)한 단어가 있다면, 단연코 ‘일자리’일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 온 이래 최근까지 중앙지 보도에서 ‘일자리’란 단어는 ‘경제성장’이란 단어보다 5.5배나 자주 쓰였고, ‘구조개혁’이란 단어보다는 무려 25배 많이 사용되었다. 이 정도면 가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일자리에 관심이 집중된 나머지, 경제성장은 외면되고 있으며, 구조개혁은 잊혀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언어는 사고를 규정하고, 나아가 행동을 규정한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가 자주 쓰는 단어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정의 핵심 과제가 바뀌고, 더 중요한 변화는 그 단어를 좇아 공무원들의 관심이 바뀐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손에 잡히는 ‘일자리 만들기’를 이야기하는데, 누가 구름 잡는 성장이나 구조개혁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성장률이란 단어도 책임이 있다. 이명박 정부 7%와 박근혜 정부 4%의 성장률 허구로 인하여 성장률이란 단어 자체가 너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아무리 성장률을 이야기하기 꺼린다고 해서 경제운영에서 성장률의 중요성이 낮아지지는 않는다.

최근 한국은행에서는 2016년부터 2025년 간 우리나라 연평균 성장률을 1.9%로, 그 다음 10년의 연평균 성장률은 0.4%로 전망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 전망은 고령화 대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 집권기간 중에도 2% 성장률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암울한 메시지다. 성장률은 일정기간 한 나라 경제활동의 총체적인 성과를 나타내는 핵심 경제지표인 만큼 경제의 각 부문이 총체적으로 원활하게 운영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자리 만들기만 좋은 성과를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구조개혁은 특정 국가나 특정 정권차원의 과제가 아니다. 세계경제의 동력이 장기적으로 약화됨에 따라 국제기구들은 모든 정부들에게 공통적으로 구조개혁을 통한 경제체질의 강화를 핵심정책으로 권고하고 있다. 저성장과 고령화를 시대과제로 직면해 있는 한국 경제에 있어서 구조개혁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도 새 정부가 들어서자 공공기관의 성과급 도입이 중단되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최저임금제 1만원 인상 문제가 현안으로 부상함에 따라 구조개혁 차원의 노동개혁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차별 문제만큼 노동시장의 유연화도 중요한 노동개혁 과제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증대하지 않고서는 성장률을 높일 수 없다. 따라서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편하게 하는 노동시장 개혁은 저출산과 저성장 대책의 핵심이지만 추동력을 잃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시장이 정권에 맞추어 변화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규제와 조세 등 정책수단을 통하여 개인과 기업의 선택을 유인할 수는 있으나, 경제운영의 틀과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성장 제고와 구조개혁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

문제는 정부가 일자리 만들기라는 눈앞의 단기성과에 급급한 결과, 한국경제의 장기 구조적 과제가 소홀히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모든 민생 문제가 저성장ㆍ고령화라는 암울한 시대 과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정부는 성장과 구조개혁의 큰 틀의 국가전략을 보여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설득력 있는 희망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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