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6.10.20 20:00
수정 : 2016.10.20 20:48

[황영식의 세상만사] 막장 드라마는 살아있다

등록 : 2016.10.20 20:00
수정 : 2016.10.20 20:48

지나친 ‘갑질’ 인식 불편하더니

“돈도 실력” 외침이 바로 덮어

눈앞 현실이 단편적 사고 강요

20일 오후 서울 신촌 이화여대 에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학사특혜 의혹을 규명할 것을 요구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TV 드라마를 자주 본다. 아침 드라마를 흘려보며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면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주말드라마도 챙겨 본다.

나란히 소파에 앉거나 바닥에 누워 드라마를 보는 게 익숙해지니 꽤나 괜찮은 소통 방법이다. 아내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게 대부분이지만, 자연스레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누게 된다.

서울 변두리에서 반평생을 살아온 아내는 TV 드라마나 영화가 한껏 과장해 묘사하는, 잘 난 사람들의 갑질을 거의 실제상황으로 여긴다. 어지간히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고루 만나본 경험에 비추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입법ㆍ사법ㆍ행정 등 특정 분야의 업무내용이나 절차에 대한 드라마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과 함께 어느새 “글쎄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어도 저렇게 막 나가는 사람은 극히 예외적”이라는 엉뚱한 변호까지 한다. 그런 소통의 결과 이제 웬만하면 “드라마니까” 하고 함께 넘어간다.

그런데 미르ㆍK 스포츠 재단 의혹의 핵심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한 마디에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졌다. 2년 전 그는 SNS에 ‘돈도 실력이다,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고교 졸업을 앞둔 철부지의 신경질적 반응이라고 치더라도, 너무 독한 말이다. 흙수저는 물론이고 은수저의 눈에서도 불꽃이 튈 만하다.

두 가지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1980년대 초 전두환 대통령의 외동딸인 효선씨는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반정부 시위대에게 “우리 아버지가 뭘 잘못했어?”라고 외쳤다. 하루도 빼지 않고 아버지를 욕하는 시위학생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었던 딸의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또래 학생들과는 완전히 담을 쌓는 계기였다. 당시 효선씨의 나이로 보아 2년 전의 유라씨보다는 훨씬 더 객관화한 인식을 가질 만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또 하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고위 임원을 지내다가 물러난 한 친구의 하소연이다. 그 기업의 오너는 밖으로는 양식 있게 보이지만, 안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임직원을 머슴이나 자신이 키우는 사냥개쯤으로 여긴다는 얘기였다. 타고난 성품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부모로부터 그런 생각을 물려받은 결과라는 게 친구의 설명이었다.

이런 불쾌한 기억에 조금만 사로잡혀도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잘 난 사람들의 갑질이 특별히 과장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울러 너무 정형적이어서 거부감을 느껴야 했던 ‘금수저~흙수저’이야기가 세상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생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TV 드라마의 ‘막장성’은 잘 난 사람들의 갑질을 최대한 드러내 시청자의 비난을 일깨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제기된 질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 막장 요소 또한 그대로 살아 남았다. 혼자 딸을 키우며 꿋꿋이 살아온 미혼모가 뒤늦게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려니, 그 매형이 딸의 친부여서 갈등과 고민을 겪는 내용의 아침 드라마가 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남녀의 모든 교제가 왜 한줌도 안 되는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이뤄지는지 알 수 없다. 시청자의 한숨과 안달을 자아내기에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만한 게 없기 때문일까. 그나마 허구인 드라마는 언뜻 도저히 풀지 못할, 고차 방정식처럼 복잡한 문제를 교묘하게 해결한다. 세상 사람들의 눈길이나 손가락질에 신경을 쓰는 대신 남녀관계의 진실성, 사랑의 깊이를 기준으로 적절히 관계를 정리한다.

이에 비해 현실의 갈등은 지극히 단순한 것조차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들 뿐 뻔한 해법을 멀리 한다. 최순실 의혹과 함께 세상을 흔들고 있는 ‘송민순 파문’이 좋은 예다. 사실관계의 개연성은 뚜렷하지만 어차피 지난 일이어서 여든 야든 충분히 객관화할 수 있었다. 현재와 다른 당시 상황의 설명과 함께 기억나는 대로 사실관계를 밝히고, 그릇된 점은 앞으로 반면교사로 삼으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때아닌 색깔론 공방으로만 치닫고 있으니, 정치적 이해에 따른 주관화의 늪이 깊고 어둡다. TV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막장 드라마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