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단행될 삼성의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과연 어디에서 맡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 안팎에선 이사회 중심의 계열사별 책임경영과 함께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그룹 현안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전실이 사라져도 미래 먹거리 발굴,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 공동 사업과 연구개발(R&D), 인력 및 기술 교류 등을 위해 계열사들의 현안을 조정하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장사 16개를 포함한 59개 계열사에 전 세계 임직원이 50만명이나 되는 삼성그룹에서는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이 쉴 새 없이 이뤄진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맏형 삼성전자가 기획ㆍ인사 부서 등의 기능을 강화해 미전실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그룹 내 매출과 인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기업이다.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등 전자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도 절대적이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주주인 삼성생명과 긴밀히 협력하기에도 삼성전자가 적격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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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전자 계열사들을 챙기고,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이 각각 엔지니어링 및 바이오 사업, 금융 사업을 아우르면 그룹의 근간은 유지될 수 있다.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이 별도의 컨트롤타워를 꾸리지 않고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를 중심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삼성전자가 그룹의 중심에 서면 이 부회장을 대신할 총수 대행 임무를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가 맡는 게 자연스러워진다. 삼성그룹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최지성 미전실장(부회장)이 경영 2선으로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주요 현안을 결정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회의도 권 부회장이 주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투명ㆍ자율경영을 강화하는 삼성의 쇄신안은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약화와 직결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은 총수 일가가 대주주이지만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지분이 3.54%에 그치고,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0.6%에 불과하다. 인적분할을 통한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이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지만 국회에서 상법 개정이 추진 중인데다 이 부회장이 구속돼 지주사 추진 시기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의 초점이 지배력이 약한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 전반에 맞춰져 있다는 것도 삼성으로선 큰 부담이다.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경영을 해도 그룹의 중심이 필요한만큼 삼성전자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삼성 측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
한편 삼성 계열사들은 내달 1일자로 부장급 이하 직원 정기인사를 단행하고, 삼성전자는 기존 7단계였던 직급을 4단계로 단순화하는 등 인사제도를 개편하다. 차장 과장 등 기존 직급명을 없애고 직원 간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는 인사제도 개편안은 실용성을 중시한 이 부회장이 추진했다.
삼성은 채용시장을 얼어붙게 한 상반기 공채 일정도 조만간 확정할 예정이다. 삼성은 매년 1만명 이상의 신입ㆍ경력사원을 뽑았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공고를 내지 않았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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