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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기자

등록 : 2017.06.29 04:40

[기자의 눈]한 축구인을 죽음으로 내몬 ‘꼬리자르기’

등록 : 2017.06.29 04:40

최근 생을 마감한 전북 현대 전 스카우트의 빈소에 놓인 조화들. 전주=윤태석 기자

정치판을 발칵 뒤집어놓은 국민의당의 문재인 대통령 아들 취업 특혜 의혹 조작 사건에는 ‘꼬리 자르기’란 말이 따라붙는다.

과연 일개 당원 혼자서 대국민 사기극을 꾸민 것이 맞느냐, 당 지도부나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사전에 알았거나 최소 묵인한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은 상식을 가진 이라면 당연히 품게 되는 합리적 의심이다.

최근 축구계에 터진 비극적인 사건도 마찬가지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 전 스카우트 A씨가 심판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지난해 5월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스카우트의 단독 행동일 리 없다’ ‘구단이나 최강희 감독이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이 불거졌다. A씨는 2002년부터 전북에 몸담았고 최 감독이 2005년 구단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줄곧 함께 한 ‘심복’이었다. 하지만 구단과 최 감독은 “A씨의 단독 비위”라고 항변했고 A씨도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와 법정에서 줄곧 “혼자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역시 “스카우트가 심판에 건넨 건 현금인데 돈에 꼬리표가 붙은 게 아니라 출처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원도 A씨와 돈을 받은 심판들에게만 유죄를 선고했다. 그렇게 ‘개인 일탈‘로 마무리됐던 사건은 A씨 죽음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A씨는 지난 16일 자신이 근무했던 축구단 사무실이 있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기자는 지난해 6월 재판장에서 A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 한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한국 축구에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 누구보다 최 감독께 폐를 끼쳐 면목이 없다”고 했다. 얼굴이 반쪽이 된 A씨에게 “정말 구단과 최 감독은 모르는 일이냐”고 차마 따져 묻지 못했다. 9월 1심 재판에서 그가 유죄를 선고 받고 4개월이 지난 올 1월경이었다. A씨가 변호사를 만나러 다닌다는 말이 들렸다. 항소 기간은 지났기에 혹시 재심을 준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하거나 못 다한 말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그는 “사회봉사 하러 다니고 있다. 백수라 시간이 많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내려와서 소주 한 잔 하며 이야기하자”고 했다. 2월 4일 토요일에 전주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전날 A씨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아들이 군에 입대 하니 만남을 미루자”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 입대 날짜를 전날 알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기자에게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게 고인과 마지막 통화였다.

사건이 터진 뒤 많은 축구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끝나서야 되느냐. 진짜 진실이 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통탄한다. 반면 “1년 반 이상 이 일로 축구계가 쑥대밭이 됐다. 고인의 죽음은 아쉽지만 이제 매듭지어야 할 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궁금하다. 고인이 진정 원하는 건 뭐였을까.

윤태석 스포츠부 기자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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