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민승 기자

등록 : 2017.11.22 16:46
수정 : 2017.11.22 22:12

[짜오! 베트남 29] 스타트업에 미래 건 청년들

64%가 “3년 안에 창업 뛰어들 것”… 인재 시장 갖췄지만 투자는 미흡

등록 : 2017.11.22 16:46
수정 : 2017.11.22 22:12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문으로 유명해진 호찌민 시내 협업 공간 '드림플렉스' 내부 모습. 월 120만동(약 6만원)을 내면 작업공간 하나를 배당 받을 수 있고 수면 소파, 회의실, 휴게실, 복사기 등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국민 평균 연령 약 30세의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창업 열기가 가장 뜨거운 나라로 꼽힌다. 이직이 잦아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이 옅고, 낮은 급여 탓에 많은 직장인이 부업을 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의 모습은 ‘스타트업의 시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채용정보 전문업체 내비고스(Navigos) 그룹이 지난달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 청년(21~36세) 3명 중 2명(64%)이 ‘3년 이내에 스타트업에 뛰어들 것’이라고 답했을 정도고, 현지 언론들도 성공한 스타트업 주자들을 소개하는 데 지면을 아끼지 않고 있다. 스타트업(Start up)은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했지만 대규모 자금 조달 이전의 신생 창업기업, 소규모 벤처기업으로 통용된다.

청년 3명 중 2명 “3년내 스타트업”

22일 베트남 기획투자부(MPI)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신규 등록된 기업 수는 1만1,158개. 전월 대비 29.6%나 상승한 수치다. 올해 들어 10개월 동안 등록된 기업 수도 작년 한해 등록된 수(11만)에 근접한 10만5,125개로, 전년 동기 대비 14.6% 증가했다. 호찌민공대 수송기계학부의 레 딘 투언 교수는 “스타트업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주변에 찾아보기 힘들다”며 “비엣 끼에우(베트남계 해외교포)뿐만 아니라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외국인도 많이 보고 있다. 베트남은 ‘창업 시대(start-up era)’ 진입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평일이었던 14일 오전 ‘사이공 이노베이션 허브’에서 열린 한 에너지 관련 스타트업 세미나는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호찌민시 ‘창업지원센터’에 해당하는 곳으로, 같은 건물 내 협업 공간(Co-working space)도 젊은 예비 창업자들로 붐볐다.

이 같은 베트남의 창업 열기는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각종 장비와 시설을 저렴하게 공유하는 협업 공간 공급이 증가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CBRE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베트남 호찌민시에 처음 소개된 협업 공간은 하노이 등 대도시에서만 이듬해 4곳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 17개로 확대됐다. 이후 6개월 동안 다시 6곳이 늘어 지난 6월 말 현재 23곳에 이른다. CBRE베트남 관계자는 “협업 공간의 가파른 증가 배경에는 스타트업 붐이 있다”고 말했다. 협업 공간은 전통적인 의미의 오피스 빌딩에서 내벽을 허문 것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공간을 공유함으로써 네트워킹,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문으로 유명해진 호찌민 시내 협업 공간 '드림플렉스'의 휴게 공간에서 입주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토양 좋지만 ‘돈 가뭄’

세계 각국 기업들의 진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베트남은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나라로 분류된다. ▦인건비, 통신비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기업 운영비 ▦인구 9,500만 규모의 큰 시장 ▦6%대의 견고한 경제성장을 통한 중산층 구매력 향상 ▦높은 교육열에 따른 고급 인적자원 등이 거론된다.

모바일 앱 개발 전문 업체 슈트릭스(Sutrix)의 크리스토프 람 이사는 “뛰어난 인재가 풍부해 정보통신(IT) 등 첨단 분야의 스타트업에게는 최적”이라며 “저렴한 인건비와 마케팅비용으로 기업 운영에 부담이 적어 베트남으로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토양’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스타트업이 뿌리내리는 데 필수적인 ‘물(투자)’은 부족한 상황이다. 스타트업 관련 강의차 베트남을 찾은 쟝 살레 길베트 ‘미나텍(MINATEC)’ 최고경영자(CEO) 자문역은 “잘 교육받은 노동력과 거대한 시장이 있지만 자금이 없는 게 문제”라며 “기술과 능력 있는 스타업들이 투자자를 찾아 각 기관과 정부를 찾아 다니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나텍은 나노기술 분야의 프랑스 국책 연구소다.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지난 7일 다낭에서 열린 ‘베트남 비즈니스 서밋’에서 베트남 경제 성장의 세 축 중의 하나로 ‘스타트업 활성화’를 거론하면서 투자를 요청했다. 베트남은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으로 스타트업 생태계 환경 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자금 조달을 위해 스타트업 증권거래소(UPCoM) 등도 운영하고 있다.

호찌민 시내 위치한 협업공간 '워크 사이공'의 한 벽면에 붙은 자기 소개 및 구인 광고판. '나는 ios 전문 개발자이고, 그래픽 디자이너를 찾고 있다'는 식이다. 협업 공간에서는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이합집산이 수시로 일어난다.

‘실리콘 밸리’ 꿈꾸는 베트남

베트남이 스타트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데에는 스타트업 활성화가 자국 기술 수준 제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컨설팅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베트남에 외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지만 기대만큼 기술이전이 되지 않거나 자국 협력사들의 기술이 향상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늘어도 자국 기업들의 활약은 눈에 띄지 않는, ‘외자에 의한 경제성장’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외국기업에 의한 수출액 비율은 2011년 49%에서 5년만인 지난해 70%를 돌파했다.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은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에게 자체적인 기술 개발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이 힘들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호찌민시 인근 ‘사이공 실리콘 밸리’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이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동남아 경제전문가 고영경 말레이시아 UNITAR 국제대 교수는 “동남아 주요 IT 기업에서 베트남 엔지니어가 증가 추세에 있고, 유수의 기업들이 개발센터를 베트남에서 키우는 등 베트남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며 “성장 잠재력이 있는 만큼 동남아 스타트업 교두보로 손색없다”고 말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지난 14일 호찌민시내 '사이공 이노베이션 허브'에서 프랑스 나노기술 분야 국책 연구소인 미나텍(MINATEC)의 쟝 살레 길베트 CEO자문역이 베트남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예비 창업자들이 주중 낮시간에도 불구하고 70여 석의 자리를 가득 메워 베트남에 불고 있는 창업 붐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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