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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선생의 명예, 독립유공훈장 추서로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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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선생의 명예, 독립유공훈장 추서로 회복”

입력
2017.11.13 17:54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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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평전’ 저자 이원규 작가

죽산 시민토론회 강연서 강조

조봉암평전을 쓴 소설가 이원규씨가 13일 인천 부평어울림센터에서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인천 부평구 제공
조봉암평전을 쓴 소설가 이원규씨가 13일 인천 부평어울림센터에서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인천 부평구 제공

“죽산 조봉암 선생의 명예 회복은 독립유공훈장을 추서 받아야 완결된다.”

조봉암평전을 쓴 소설가 이원규(70)씨는 13일 인천 부평어울림센터에서 부평문화원과 부평역사박물관 주최로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2007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규명 결정과 2011년 대법원 재심 판결로 죽산 선생의 명예가 회복됐으나 아직까지 독립유공자 서훈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국가보훈처는 유족의 서훈 신청을 반려한 이유로 죽산의 ‘친일행적’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공산당과 진보당 했던 죽산이니까’라는 진영 논리 때문이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1899년 강화도에서 태어난 조봉암 선생은 일제 때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했고 해방 후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초대 농림장관으로서 농지 개혁에 성공했고 2, 3대 대선에서 자유당 이승만 후보에 맞섰다. 그러나 1958년 ‘진보당 사건’에 연루돼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이듬해 생을 마쳤다. 유족이 재심을 청구한 끝에 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씨는 “6ㆍ25 전쟁 중에 피해를 입거나 반공을 신념으로 가진 분 중에 죽산이라면 괜히 머리를 흔드는 분들이 있으나 죽산이 공산주의 활동을 한 건 광복 전 일”이라며 “광복 후 전향해 반공주의자로 살았고 수도경찰청장을 지낸 장택상 선생 등이 ‘조봉암은 간첩도 아니고 공산주의자도 아니라’고 항변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년 뒤 탄생 120년, 서거 60년이 될 때까지는 서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라며 “죽산은 60년 전 ‘책임정치’와 ‘수탈 없는 정의로운 경제’, ‘평화통일’ 등을 주장했는데, 죽산 정신의 진정한 계승을 위해 그와 관련된 사진, 서류 등 작은 자료와 일화를 찾고 그의 활동과 역할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이 13일 인천 부평어울림센터에서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천 부평구 제공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이 13일 인천 부평어울림센터에서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천 부평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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