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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발달에 따른 문화적 진화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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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발달에 따른 문화적 진화에 주목해야 한다”

입력
2017.01.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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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내 북파크에서 처음 방한한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론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인터파크 제공
2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내 북파크에서 처음 방한한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론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인터파크 제공

“I, Don’t, Know!”

일흔 여섯의 나이에 알맞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리처드 도킨스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한 구절씩 따박따박 내뱉었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게 질문이었다. 도킨스는 “그런 질문은 사회학자나 역사학자에게 해달라”면서 “자기 전문 분야에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는 척 하면 사고가 일어난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며 웃었다.

21일 오후 3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내 복합문화공간 북파크.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의 책을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대중 과학 저술가 도킨스의 첫 방한 강연회가 열렸다. 하루 앞선 20일 입국했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사슴 문양이 그려진 넥타이를 멘 도킨스는 여유롭게 강연을 진행해나갔다.

도킨스는 최근 다소 후회된다고는 했지만, ‘이기적’이란 표현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쓸 정도로 유전자의 절대적 우위를 주장해왔다. 온갖 비판이 쏟아졌음에도 꿋꿋이 버텨냈다. 19세기 지식인 토머스 헉슬리가 ‘다윈의 개’를 자처했듯, 도킨스는 ‘유전자의 개’를 자임한 셈이다. 유신론자들과 너무 강하게 충돌하는 바람에 종교계와 불필요한 다툼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전투적 무신론자’라 불리기도 한다. 물론 이 표현엔 조롱이 일부 섞여 있다. 도킨스의 이런 명성을 반영하듯 이날 강연회에는 300명의 청중이 몰려들었고, 강연회 뒤엔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이날 강연 제목은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였다. 도킨스는 강연을 다니다 보면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 질문은 자주 받는다며 운을 뗐다.

그는 우선 한가지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지금까지의 진화 단계를 거꾸로 되돌려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그래도 지금 우리의 인류 같은 이들이 존재할까.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돌리듯 100번, 1,000번 되돌린다 해도 지금 인류가 존재할까. 도킨스는 그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설명했다.

2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내 북파크에서 처음 방한한 리처드 도킨스가 방사진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터파크 제공
2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내 북파크에서 처음 방한한 리처드 도킨스가 방사진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터파크 제공

도킨스는 ‘방사진화’ 원리를 이유로 들었다. 방사진화란 진화가 일직선상으로 진행되는것이 아니라 큰 줄기에서 현지 적응하는 방식으로 분기한다고 보는 시각이다. 남미와 호주 등에서 발견되는 유대류들을 예로 들었다. 남반구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포유류가 없다. 그러면 북반구의 포유류에 해당하는 동물들이 없어야 하는데, 대신 유대류가 그 자리를 대신 메운다는 것이다.

가령 북반구에서 날다람쥐는 설치류지만, 호주에서는 유대류다. 북반구에는 고양이과 호랑이의 일종인 세이버투스 종이 있었는데, 남반구에 있는 똑같은 세이버투스 종은 유대류에서 진화했다. 도킨스는 “1930년대에 멸종된 태즈매니아 늑대의 경우 외관은 완전히 늑대나 개지만 실제로는 캥거루와 같은 유대류”라면서 “지리적 격리 등을 통해 독립적으로 진화했음에도 그 결과는 비슷하다는 점에서 진화의 방향은 비슷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 여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패턴화된 진화의 방향”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경향성을 본다면, 지금 현존 인류의 등장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봐도 좋다. 또 이제 파격적이고 특이한 인류의 진화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된다. 두뇌가 커진다거나 날개가 돋는다던가 할 일은 없다. 각기 다른 초능력을 지닌 돌연변이들이 등장하는 영화 ‘X맨’은 그냥 영화일 뿐이다.

다만 남은 가능성은 급격한 기술 발달에 따른 문화적 진화 가능성이다. 도킨스는 “기술이 더 많이 발달해 화성에다 식민지를 건설한 뒤 유전자 흐름이 지구와 격리되는 상황 같은 것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AI(인공지능)가 인류 진화에도 영향을 끼칠까. 도킨스는 “매우 재미있는 주제인 것은 맞고, 다소 비관적이고 무서운 얘기들도 나오고 있다”면서도 “지금으로서는 AI가 인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길 기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수세기 뒤에 보면 진화의 역사는 결국 옳은 방향으로 움직였을 것이라 믿는다”며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시각을 보였다.

다만, 이 모든 이야기는 인류가 멸종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 도킨스는 “지금껏 지구상 존재한 모든 종은 거의 대부분 멸종했다”면서 “인류 진화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하려면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다면’이란 조건을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혜성충돌로 인한 멸종설 같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는 생태계의 다양성 감소다. 도킨스는 “동ㆍ식물들의 다양성 감소가 우려스러운 수준”이라 말했다.

도킨스는 이후 22일 세종대 대양홀에서 ‘진화는 예측가능한가’를 주제로 강연을 한차례 더 열고, 25일 고려대 KU시네마트랩에서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 대담(오후2시 네이버 생중계) 등을 이어간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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