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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6.03.03 14:04

[김월회 칼럼] 마음공부

등록 : 2016.03.03 14:04

3월이다. 따스해진 햇볕, 탱탱해진 나뭇가지, 움트는 꽃눈. 여기에 3이란 숫자가 주는 안정감이 더해지며 삶터 곳곳서 설렘을 만난다.

그리고 대학 입학, 3월은 올해도 어김없이 그렇게 시작됐다.

대학 입학이라, 말 잘 듣고 일 잘 하는 ‘근로자’를 기르라는 터무니없는 간섭에 맞서기는커녕, 대학 스스로 ‘고가(高價)’의 취업학원임을 자처하고 있는지라 참으로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대학 입학은 기념돼야 마땅하고 응당 뿌듯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그러해야 한다.

대학은 글자 그대로 풀면 ‘큰 배움’ 또는 ‘큰 학문’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크다는 것은 결코 어렵다거나 복잡다단함을 뜻하지 않는다. 유교 경전의 하나인 ‘대학’에는, 대학의 목표로 3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밝은 덕을 밝히다” “백성을 피붙이처럼 여기다” “지극한 선의 상태를 유지하다”가 그것이다. 이를 오늘날의 용어로 다시 표현하자면, 진리 탐구와 더불어 삶, 끊임없는 자기 수양이다. 이 중 한 가지만이 대학의 목표가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이 셋을 다 실천하는 것, 그것이 대학 그러니까 큰 배움의 목표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대학 입학이 개인의 영광에 그칠 일이겠는가. 응당 온 사회가 다 함께 기뻐하고 설렐만한 일이다. 그들이 진리 탐구에 게을리 하지 않고, 생업에 쫓겨 미처 큰 학문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이들과 함께 하며, 이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선해지고자 깨어 있음으로 인해 이지적이며 열린 사회가 빚어지고, 상생하는 삶터가 구현되며, 탐욕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전근대시기엔 대학에 들어가는 이들에겐 이름을 하나 더 부여했다. 호(號)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나 호를 지닐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엔 적어도 향시는 통과해야 했으니, 지금으로 치자면 고등교육기관 입학 자격을 얻어야 호를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호는 집안 어른이라든지 스승 또는 상급자와 같이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받았다. 이와 무관하게 호를 지닌 경우를 그래서 자호 곧 스스로 지은 호라고 하여 호의 일반적 쓰임새와 구분하였다.

이렇게까지 한 까닭은 호는 일종의 사회적 이름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기관에 입학할 자격을 얻었다 함은 사회적으로 언제든지 공인이 될 자격을 얻었음을 가리켰다. 곧 새로운 자격을 얻었으니 새로운 이름을 지녀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이 공인이기에 사회적 차원에서 새로운 이름이 부여됐다. 따라서 호로 불릴 때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사적 개인이 아니라 공인임을 되새김질하면서, 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해야 했다. 이렇듯 고등교육기관 곧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사회적 의미가 결코 작지 않았다.

안 그래도 ‘헬조선’이 기본값으로 주어지는 오늘날, 대학의 새내기들에게 또 다른 사회적 책무를 채근하고자 이런 얘기를 함이 절대 아니다. 필자는 이 땅의 기득권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헬조선이 운운되는 현실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 가운데 하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지서 떠다니는 말 가운데 ‘꼰대’의 한 속성이,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도 조언을 해주는 이라고 한다. 이에 입각하면 필자는 영락없는 꼰대이기도 하다. 이렇게 꼰대를 자처하는 까닭은 새내기에게 한 가지만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마음공부가 그것이다. 대학에서 주되게 닦을 것이 지식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대학이 큰 학문, 큰 배움의 전당인 까닭은 지식을 머리로만 익히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는 의외로 사뭇 취약하다. 양명학을 정초한 왕양명은, 효를 알고 있어도 여건상 행하지 못할 때도 있지 않냐는 제자를 호되게 꾸짖었다. 행함으로 옮기지 못한 앎은, 다시 말해 머리로만 아는 앎은 참된 앎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곧 머리로 안다고 하여 일상생활에서 그 앎이 곧장 구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마음공부가 긴요한 까닭이 이것이다. 머리와 신체, 생활을 이어주는 가교가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익히 경험했겠지만 마음을 마음대로 다스린다는 것은 정말 녹록지 않다. 그래서 공부 곧 훈련이 요청된다. 가령 무술을 한 가지쯤 연마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무(武)는 창[戈]을 써서 전쟁을 그치게 한다[止]는 뜻이다. 무술은 신체의 능력을 키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툼이 해소된 상태 곧 평화, 평정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음이 꼭 품어야 하는 덕목의 하나다.

여기에 많이 얘기하듯이 악기를 하나쯤 다룰 줄 알고, 틈나는 대로 독서를 한다면 더욱 좋으리라. 소리를 내기 위한 연주가 아니라 마음을 조율하기 위한 연주를, 머리만 쓰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마음을 경작하기 위한 독서를 한다면, 마음공부에 분명 느낄 만한 진전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의 힘 곧 심력을 기르게 되면, 삶의 조건이 ‘헬’이라 하여 나 또한 지옥이 되는 것만큼은 방지할 수 있을 듯싶다.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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