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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즐거운 소비

입력
2017.01.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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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원체 작아 기성 구두 중엔 맞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나는 아예 구두를 신지 않거나 꼭 신어야 하는 날이 생기면 수제화를 맞추었다(내 발 크기는 왼쪽 오른쪽이 달라 217, 215㎜다, 맙소사). 마지막으로 구두를 산 건 결혼 전 상견례를 앞두고서였다. 아깝게도 그날 딱 하루를 신었다. 신발장 안에는 한 번밖에 신지 않은 구두들이 숱하다. “구두 값만 아꼈어도 작업실 보증금은 나왔을 걸.” 나는 자주 투덜거렸다. 자주 가던 낙지집에서는 낙지볶음 한 접시만 시켜도 될 것을, 꼭 연포탕까지 같이 시켜서 늘 남겼다. “우리가 제대로 먹지도 않은 연포탕이 대체 몇 냄비일까. 그것만 아꼈어도.” 내 말에, “됐어. 술자리에서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났어도 우린 택시비를 아껴서 차 한 대는 뽑았을 거야.” 친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거 아끼자고 한 숟갈 떠먹고 싶은 연포탕을 마다하고, 오랜만에 본 친구들 뿌리치고 일찍 가고 그랬으면 인생 무지하게 고독해졌을 거야. 그 값을 치른 거니 괜찮아.” 친구의 위로가 그럴 듯 했다. 몇 년 전 여행 중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샀다. 순전히 예뻐서였다. 그 책들은 핑크색 가죽표지다. 그것도 연한 핑크, 진한 핑크, 보통의 핑크… 그런 식으로 말이다. 한국어로 된 책도 안 읽고 미뤄둔 판에 깨알 같은 영어를 읽을 리는 없어서 지금 그 책들은 거실 장식장에 얌전히 놓여 있다. 그러고도 이번에는 또 다른 제인 오스틴 책들에 다시 눈이 팔린다. 패브릭 회사와 컬래버레이션을 해서, 화사한 꽃무늬 표지로 나온 시리즈다. 도대체 이 쓸데없는 소비는 끝날 줄을 모른다. 하지만 눈이 즐거운 건 결국 내가 즐거운 것이니 이 정도 소비는 괜찮겠지. 다들 즐겁자고 사는 거잖아, 흠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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