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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진상조사의 권위는 중립성에 있다

입력
2016.07.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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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분으로 지새우다 종료한 세월호 특조위

여야 추천위원으로 구성돼 견제만 일삼아

이해 당사자 인정한 칠콧 보고서가 본보기

2004년 1월 그레그 다이크 BBC 사장이 사임 발표를 했을 때 영국 전역의 2만여 BBC직원들은 사임 반대 거리 시위를 벌였다. 영국의 자존심이라는 BBC 사장의 사퇴는 이라크 참전 명분과 관련된 보도 때문이다. BBC 국방부 출입기자는 국방부 내부 제보를 토대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영국 정부 정보가 조작됐다고 보도했고, 토니 블레어 정부는 이를 반박했다. 블레어 정부와 BBC사이의 진실공방 와중에 제보자인 국방부 무기전문가는 신원이 노출되자 자살했다. 친 블레어 성향의 판사가 위원장을 맡은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른바 ‘허튼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정보 조작은 없었으며 BBC의 뉴스편집 프로세스에 하자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역사상 유례없는 BBC 직원의 거리 시위는 정권의 입맛에 맞게 왜곡된 보고서를 낸 데 원인이 있었다.

대량살상무기 존재 여부 등 이라크 참전 명분을 둘러싼 끊임없는 논란에 블레어의 후임인 고든 브라운 총리는 2009년 6월 원로 행정가인 존 칠콧경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역사 군사 외교 등 교수와 전문가 5명이 주축이었다. 칠콧은 위원회 출범에 즈음해 “조사위원회는 비정치적이며, 열린 마음으로 이라크 참전과 그 결과를 살펴볼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조사기간은 1년으로 예정됐지만 조사위원의 사망 등으로 기약 없이 늦어졌다. 전사 장병 유족의 불만이 높았다. 무엇보다 블레어를 포함, 참전 결정 과정에 참여한 증인에게 반론권을 과도하게 부여하는 데 대해 면죄부를 줄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이 컸다. 칠콧은 “보고서의 공정성, 정확성, 완성도에 있어 핵심 사항”이라며 달랬지만 유족들은 위원회를 상대로 불법 여부를 가리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위원회 출범 7년만인 지난 6일 이른바 ‘칠콧 보고서’가 마침내 발표됐다. 12권으로 이뤄진 보고서는 260만 단어로 채워져 읽는 데만 열흘 걸리는 방대한 양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는 근거가 없으며, 잘못된 정보 판단으로 참전을 결정했다는 게 핵심 결론이다. 가디언지는 “블레어를 용서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평했다. 역대 총리에게 가해진 가장 준엄한 평결이라는 칠콧 보고서에 대해 블레어는 “당시로서는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토를 달았지만 보고서 내용을 부인하진 못했다. 그간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던 179명의 전사 장병 유족들은 성명서를 읽고 떠나는 칠콧에게 박수를 보냈다.

2015년 1월 출범한 세월호참사 특별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달 30일 공식 조사활동을 종료했다. 실질 조사활동 기간으로 산정할 경우 내년 2월까지라는 주장이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 정부는 파견 공무원을 복귀시키고 있다. 지난 1년 6개월의 활동기간 동안 230여개 조사 안건의 진행률은 불과 30%다. 특조위가 공식 채택한 보고서는 제주 해군기지로 가는 철근이 실렸다는 내용의 세월호 과적 보고서 단 한 건이라고 한다.

조사가 지지부진했던 요인은 여러 가지다. 시간 끌기나 무응답, 부실자료 제출 등 청와대, 국정원을 포함한 정부 기관의 비협조가 컸던 반면, 한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 행적 조사 요구 등 ‘정치적 활동’을 하느라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특조위는 여당 추천인사가 사사건건 다른 목소리를 냈다고 하소연했다. 무슨 탓을 하더라도 세월호 진상조사위의 운명은 시작부터 결정돼 있었다. 여야가 각각의 추천 인사를 끼워 위원회를 구성키로 합의했을 때 이미 정치색이 씌워졌다. 협조와 효율성보다 견제가 앞서는 위원회 구성으로 진실규명 작업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칠콧 보고서가 발표되기 전 허튼 보고서를 포함, 이라크 참전 결정과 관련한 네 차례의 보고서가 나왔지만 여러 반대 증거에도 불구하고 참전 결정의 정당성만 부여하는 결론으로 반발만 샀다. 이해 당사자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한 진실 규명의 목소리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진실규명의 시효를 앞당기는 첩경은 위원회의 중립성에 있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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