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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깊어도 너무 깊은 장기요양기관의 ‘방만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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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깊어도 너무 깊은 장기요양기관의 ‘방만운영’

입력
2016.01.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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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임금 덜 주고

70%이상서 급여 부당청구

665곳이 178억원 빼돌려

●회계기준 신설 개정안

로비에 국회서 1년째 낮잠

요양보호사 이모(65)씨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5시까지 한 달 평균 22일 동안 노인들을 돌본다. 오전에는 장기요양보호기관(요양기관)이 소개해 준 치매 어르신 집을 찾아 4시간, 오후에는 중풍에 걸린 어르신을 2시간30분간 수발한다. 1주일에 3일씩은 다른 노인들의 집을 방문해 목욕도 시켜드린다. 일이 끝나면 팔, 다리, 어깨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지만 그의 한 달 수입은 110만원 정도다. 시급(6,725원)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제대로 주지 않을 때도 있다. 이씨는 2012년 8월부터 하루 4시간 이상씩 치매노인을 돌봤지만 요양기관은 이씨가 일한 시간을 3시간30분만 인정했다. 두 달 전에는 방문목욕서비스에 대한 임금 9만6,000원 중 이유 설명도 없이 3만6,000원만 준 적도 있다. 이씨는 “기관이 내 임금을 착복해온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며 “평소에도 월급이 몇 만원씩 들쭉날쭉 할 때가 있지만 기관에 찍힐까 봐 자세히 물어보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치매 어르신의 증가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만, 제도 운영의 큰 축인 요양기관의 방만운영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인프라 확충을 위해 요양기관 투명성 감독에는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요양기관의 재정적 투명성을 감시하기 위한 법 개선도 관련 단체의 로비에 막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요양기관 10곳 중 7곳 허위ㆍ부당청구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돌봄을 받는 노인은 43만명(2014년 기준), 요양급여비(환자부담금과 건보공단 부담금)는 4조원에 이른다. 도입 초기 수급 노인이 21만명, 요양 급여비가 4,800억원었던 것에 비하면 재정적으로만 8배 이상 몸집이 커진 셈이다. 하지만 요양기관의 방만운영은 오히려 도를 더해가고 있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요양기관이 건강보험공단에 허위 혹은 부당 청구한 급여 비용은 178억원, 적발된 기관은 665곳에 이른다. 전국 1만6,500개에 달하는 요양기관 중 약 5%(921개) 정도를 현지 조사해 적발한 금액인데도 이 정도다. 조사대상 요양기관의 72%인 665개 기관이 허위ㆍ부당청구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사실상 민간이 주도하는 요양기관은 장기요양보험재정을 ‘눈먼 돈’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전체 요양기관에 매년 최소 수백억원대의 장기요양보험재정이 부당하게 흘러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기관들은 주로 요양보호사들의 근무시간을 부풀리거나, 일하지도 않은 요양보호사가 일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거액을 청구하는 방법으로 보험재정을 부당하게 빼돌렸다.

정부는 제도를 도입하던 2008년 민간에서 요양기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재무ㆍ회계 자료 제출 등의 의무는 부여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요양기관과 같은 노인복지시설은 노인복지법에 따라 재무ㆍ회계 규칙이 있어야 운영이 가능했고,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등 비영리기관만이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 도입에 따른 인프라 확충이 시급했던 정부는 “민간의 경쟁이 서비스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민간의 진입을 허용했다. 대신 재정 투명성 확보는 포기했다. 장기요양법상 요양기관은 재무ㆍ회계규칙을 두지 않도록 했는데, 2014년 현재 장기요양법에 따른 요양기관은 재가시설(요양보호사가 노인을 방문하는 형태의 시설)을 기준으로 전체의 87%에 달한다. 민간이 주도하는 요양기관들이 노인 돌봄보다 영리추구에 몰두해 왔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정부는 이를 바로잡을 법적 근거가 없어 손을 쓸 수 없었다.

●투명성 강화 법안 1년째 법사위 계류

요양기관의 방만운영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2014년초 요양기관에 재무ㆍ회계기준을 신설해 운영해 투명성을 높이고, 서비스 수가의 일정비율을 요양보호사 인건비로 지출하도록 하는 장기요양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국회 상임위는 그 해 12월 이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법안은 1년이 넘게 법사위에 묶여있다. 지난 해 5월 법안을 심사했지만 일부 의원들이 민간시설에 대한 회계기준 도입은 개인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법 통과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관련 단체들은 법 통과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문오곤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부회장은 “제도 도입 당시 복지부가 민간컨설팅 업체까지 동원해 시설 설치를 홍보했다”며 “사업성과 수익성을 믿고 진입한 민간자본이 전체 인프라의 70% 이상을 책임지며 제도 발전에 기여한 점이 있는데도 모든 문제의 주범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처럼 민간시설들이 장기요양제도의 정착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투명성 확보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 국장은 “제도 도입 당시 기관을 빨리 늘리려고 복지시설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조차 만들지 않고 운영하게 한 정부에게 ‘원죄’가 있다”며 “조속히 개정안을 통과시켜 최소한의 감독은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스란 복지부 요양보험제도과장은 “정부는 도입 당시 민간의 효율성과 경쟁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을 기대했으나 예상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민간 시설들도 보험료, 국고 등 공공재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공공성 확보와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는 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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