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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연의 뫼비우스 띠

입력
2016.08.2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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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인연고리 1

5년 전쯤 잘 알고 지내던 배 이사로부터 K사를 소개 받았다.

“조 변호사님, 제가 볼 때 K사가 너무 억울한 거 같아요. K사 사장이 제 후배인데, 잘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배 이사 부탁으로 K사를 대리해서 상대방인 H사를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쉽지 않은 사건이었다.

배 이사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내게 여러 번 밥을 사면서 “열심히 소송 진행해 주신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셔서 정의를 세워 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나는 승소를 위해 상대방 H사 상무를 증인으로 불러내서 2시간 가까이 혹독하게 증인신문을 했다. 결과는 K사의 1심 승소. H사는 2심, 3심까지 상소했지만 결국 K사 승소로 확정되었다.

# 2 : 인연고리 2

2년 전쯤, 나와 고문계약을 체결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 온 의뢰인이 있어 약속을 잡았는데 회의실에서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저 기억 나시나요? 그때 증인석에서 저를 아주 호되게 몰아붙이셨죠?” K사를 대리하여 치열하게 소송을 진행했던 상대방인 H사 황 상무였다.

“저희 사장님이 그때 재판을 진행하는 조 변호사님 보면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으셨습니다. 그 사건에 패소해서 우리 회사가 아주 힘들었었죠. 그 뒤로 몇 건의 소송이 있었는데 결과가 하나같이 신통치 않았어요. 그래서 사장님이 이번에 고문 변호사를 조 변호사님으로 바꾸고 싶다고 저를 이렇게 보내셨습니다.”

이럴 수도 있나. 패소의 쓴맛을 안겨준 변호사와 고문 계약을 체결하다니.

나는 얼떨결에 H사 고문변호사가 되었다. H사를 방문하여 H사 곽 사장과 인사도 나누었다. 과거 소송 이야기가 이제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안주거리가 되었다.

# 3 : 인연고리 3

1년 전쯤, K사 소송 건을 내게 소개했던 배 이사가 급히 나를 찾아왔다. 배 이사가 다니던 회사에 문제가 생겨 6개월째 급여가 나오지 않는 상황. 대표이사는 거액을 챙겨 잠적해 버렸다는 것.

“혹시 변호사님이 알고 계신 주위 기업 중에 저를 소개할 만한 기업이 있을까요. 워낙 사정이 절박하다 보니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변호사님께 요청을 드립니다.”

나는 배 이사가 소송을 도와주었던 K사에 부탁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배 이사는 “세상인심이 참 야박하더군요. 제가 그때는 후배 일이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도와줬는데, 이번에 취직자리를 부탁했더니 완곡하게 거절하더군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알아보겠다고 말은 했지만, 배 이사 나이를 고려할 때 일자리를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H사 황 상무가 전화를 걸어왔다.

“최근 우리 회사 본부장이 형이랑 사업한다고 갑자기 퇴사해서 고민입니다. 50대 초반에 직장 생활 경험 풍부한 영업 본부장을 찾고 있는데, 혹시 주위에 괜찮은 분 없으십니까?”

“아, 그러세요, 제가 한 분 알고 있습니다. 능력도 출중하시고 인품도 훌륭하십니다. 저와는 10년 인연이신데, 제가 추천해 드릴만 한 분입니다. 지금 근무하는 회사가 내부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다른 기회를 찾고 계신 중입니다만, 제가 추천해 드릴까요.”

황 상무는 “조 변호사님이 추천하시는 분이라면 대환영입니다. 그분께 말씀을 잘 드려주세요.”라며 반가워했다.

배 이사는 H사 곽 사장과 2차례 면접을 거친 후 H사의 영업 본부장(이사급)으로 영입됐다.

배 이사가 H사 영업 본부장으로 옮겨 갈 수 있게 된 데는 어떤 인연의 고리가 숨어 있었을까.

돌이켜 보면 배 이사가 아무 조건 없이 자기 후배 회사인 K사를 위해 발 벗고 나서서 오지랖 넓게 나를 소개해주고 나에게 밥을 샀던 그 자발적인 선행행위가 돌고 돌아 멋진 인연의 뫼비우스 띠를 만든 것이 아닐까.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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