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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왜곡된 경제생태계 살리기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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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왜곡된 경제생태계 살리기가 우선”

입력
2017.12.03 21:3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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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 진보ㆍ보수정권 20년

대통령 단임제 탓 정책주기 짧아

장기 프로젝트 없이 성장만 유지

가치집단이어야 할 정치생태계는

이익추구 담합형 집단으로 변질

수출주도형 ‘박정희 모델’ 여전

신용보증 등으로 약자도 생존해

기업의 생성ㆍ소멸 안 이루어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경제생태계를 살리려면 정치적 요소가 경제를 압박하지 않도록 헌법, 선거제도, 정당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우한 기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경제생태계를 살리려면 정치적 요소가 경제를 압박하지 않도록 헌법, 선거제도, 정당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우한 기자
'한국의 경제생태계'
'한국의 경제생태계'

“일본 장기불황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경제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가 경제의 상위개념으로 군림하면서 경제생태계가 심각하게 왜곡됐다.”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협상 수석대표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69) 니어(NEAR) 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0일 출간한 책 ‘한국의 경제생태계’를 통해 한국경제 전반에 퍼진 병리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정 이사장을 포함한 13명의 분야별 연구가들이 한국경제를 생성과 성장,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생태계의 관점에서 접근해 저성장 구조와 생산성 하락, 기업ㆍ가계 부문 선순환 고리 단절 등의 원인을 짚어낸 것이다.

정 이사장은 1일 서울 여의도 니어재단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정치생태계가 경제생태계를 망가뜨렸다”며 “임기 내 끝내려는 조급함 때문에 여러 정권에서 이어져야 할 장기 국가 프로젝트가 사라지고 정책 주기가 짧아졌다”고 지적했다.

-책 ‘한국의 경제생태계’ 구상 배경은

“지난 2012년 부동산 시장 영향으로 가계 부채가 폭증하는 것을 보고 그 원인에 대해 천착하게 됐다. 가계 부채의 상당 부분은 생계형으로, 일자리도 부족하고 가계 수입도 늘지 않는데 주거비만 올랐다. 소비의 주체인 가계가 노동 공급이라는 제한적 역할에 머물면서 시장의 가계 부문이 침체했다. 반면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기피했다. 정부에서 임금 상승을 요구하는데다 해외 생산비용이 저렴해 국내투자에서 ‘노동’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자본ㆍ노동 간 연결이 끊어지는 우리나라 순환체계의 단절을 바라보게 됐고, 이걸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한 생태계로 연결해 본 것이다. 2014년 일본 강연에서 일본 장기불황의 모형을 생태계적 관점에서 제기했고 연구팀을 2015년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간 한국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20년 동안 한국경제는 하강의 길을 걸었다. 진보와 보수가 각각 10년씩 정권을 장악했지만 경제에 관심을 두는 대통령이 거의 없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은 이념적 진영의 한쪽 편만 지지한다는 점이 한계다. 전국적 지지를 받지 못하니 보수와 진보의 통합 정신을 추구할 수 없다. 경제를 진영 간 싸움에 끌어들이고 과잉 이념화 시키면서 진보정권은 노동을, 보수정권은 자본을 각각 분리 적대시켜 외발 자전거를 타고 5년간 달리려고만 한다. 노동의 한계 생산성과 자본의 한계 효율을 함께 높여야 한국 경제가 확대 균형으로 갈 수 있는데 그러질 못하니 한국의 잠재성장력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다. 정치가 경제의 상위 개념으로 군림하면서 경제가 내팽개쳐진 것이다.”

-중국 기업의 추격이 매섭다

“중국의 산업정책은 야구의 ‘히트 앤드 런’ 정책이라 부를 수 있다. 중국 기업은 앞뒤 재지 않고 뛰고, 리스크는 중국 정부가 규제 완화와 과감한 금융지원 등으로 뒷수습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런 ‘기술 굴기’를 통해 다양한 신산업에 진출했다. 반면 한국은 산업 구조조정을 방기하면서 철강과 기계,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요산업에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특히 5년 단임 대통령제 때문에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정쟁에만 골몰했고, 중국 특수에 가려 국내 경제상황을 바로 보지 못했다. 국내에선 노동시간이 단축됐으나 임금은 올라가고 투자는 이뤄지지 않으니 다시 고용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5년 단임제 대통령들은 임기 내 경제를 지켜야 하니 장기 프로젝트 없이 3% 성장률 유지에만 급급해 매년 막대한 추가경정예산을 쏟아 붓는다. 경제가 움직여 나가는 시장의 기본 메커니즘이 상실된 것이다.”

-한국 정치계를 담합 형 이익집단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년 동안 보수 진보 간의 정쟁으로 정치 진영이 이익집단화 됐다. 원래 정치는 가치집단이고, 기업은 이익집단이다. 가치집단에서 가치를 정리해주면, 가치적 나침반에 따라서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고 세금을 납부해 복지로 쓰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한국의 정치생태계는 가치 집단이어야 하는데, 이익추구 담합 형 정치 집단으로 변질됐다. 이런 상황이라 문재인 대통령이 자본에 무게를 둔 혁신 성장론을 들고 나왔지만, 여전히 자본과 노동을 결합하는 통합의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한발을 노동에 두고, 다른 발을 자본 쪽에 살짝 걸치는 게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결국 노동과 자본이 연결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 경제생태계 파괴는 얼마나 심각한가

“한국 경제는 생성되는 건 막고, 죽기도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신규 기업의 창업은 너무 어렵고, 늙은 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50년 동안 주력 기업이 거의 안 바뀌었고, 최근 30년은 더욱 그렇다. 경제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기업의 생성과 소멸이 적절히 이뤄져야 한다. 강자만 남는 게 생태계의 원리인데, 한국은 신용보증 등을 통해 약자도 오래 산다. 한국은 여전히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주도형 박정희 식 개발 모형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제생태계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치적 요소가 경제생태계를 압박하는 부분을 잘라 내야 한다. 한국은 정치생태계가 과잉 이념화되면서 시장경제의 승자들이 정치가 무서워 담합 체계를 만든다. 패자들은 정치 활동을 통해 승자가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러면 기업은 투자를 기피하고, 노동조합은 정치화, 권력화의 길을 걷는다. 과잉이념화를 없애려면 헌법과 함께 선거제도, 정당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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