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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는 미래 산업”… 국내 유일 공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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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는 미래 산업”… 국내 유일 공장 가보니

입력
2017.06.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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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닐 팩토리 직원이 LP 프레스 과정을 거친 판을 기계에서 빼내고 있다. 1일 문을 연 국내 유일의 LP 공장인 바이닐 팩토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최지이 인턴기자
바이닐 팩토리 직원이 LP 프레스 과정을 거친 판을 기계에서 빼내고 있다. 1일 문을 연 국내 유일의 LP 공장인 바이닐 팩토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최지이 인턴기자

“치이익”.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공장. 아이스하키 퍽 모양의 재료를 고정된 선반에 꽂고 버튼을 누르니 압축 과정을 거쳐 원판 하나가 나온다. 기계는 2분에 1개꼴로 원판을 찍어 냈다. 오는 13일 발매될 펑크(Funk) 밴드 커먼그라운드의 4집 ‘댄스 리퍼블리카’ LP였다. 사무실에 걸린 일정표에는 지난 3월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된 가수 조동진의 6집 ‘나무가 되어’부터 밴드 어떤날의 1~2집 등 이달 찍어낼 LP들 제작 일정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330㎡(100평) 남짓의 공장은 바쁘게 돌아갔다.

마장뮤직앤픽처스(마장뮤직)가 지난 1일 국내 유일의 LP 공장인 바이닐 팩토리의 문을 열었다. 서울 시내에 LP 공장이 들어서기는 20여 년 만이다. CD의 등장으로 음악 시장이 디지털로 재편되면서 서울 시내 아날로그 LP 공장은 1990년대 줄줄이 문을 닫았다. 경기 김포시에 하나 남은 공장마저 2014년 폐업해 국내 LP 제작의 명맥은 끊긴 상태였다. 가수들은 LP 제작을 독일, 체코 등 해외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장거리 배송 문제로 LP 제작 의뢰부터 수급까지 6개월이나 걸리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닐 팩토리의 등장으로 음원과 LP의 동시 발매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배송 기간이 사라지는 등 LP 제작 기간이 3주로 짧아진 덕분이다.

180배로 확대해 볼 수 있는 현미경으로 LP의 홈을 체크하고 있다. 불량 LP를 검수하는 과정이다. 최지이 인턴기자
180배로 확대해 볼 수 있는 현미경으로 LP의 홈을 체크하고 있다. 불량 LP를 검수하는 과정이다. 최지이 인턴기자

“6년 전과 비교해 20배 성장” 서울에 공장 들어선 LP 시장의 부활

땅값 비싼 서울에 LP 공장이 다시 들어선 배경에는 LP 시장의 부활이 있다. 여러 음반사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LP 시장 규모는 한 해 100억원대로 추정된다. 판매량은 20만 후반대로, 6년 전 만 장 단위 수준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20배 가까이 폭증했다. CD시장보다 매출 규모는 미약하지만, 성장세는 폭발적인 셈이다. 인터넷 음반· 도서 판매업체인 예스24의 올 상반기(1월~5월) LP 매출도 3년전 같은 기간 대비 6배나 뛰었다.

20~30대 소비자의 구매율이 늘어난 덕이 크다. 총 판매량 중 20~30대가 구매한 LP 점유율은 2013년 27.5%, 2014년 38.0%, 2015년 40.1%로 꾸준히 높아졌다. 20~30대가 옛 매체인 LP에 새로운 가치를 찾고 있어 생긴 변화다. 실제로 LP를 사는 20~30대는 CD보다 LP의 소장 가치를 높이 샀다. 대학원생인 김찬(27)씨는 “CD와 LP 모두를 사도 어차피 음원 사이트에서 음원을 듣지 않느냐”며 “LP플레이어를 선물 받아 LP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LP의 아트웍(앨범 재킷 사진)에 반해 CD를 사지 않고 LP를 산다”고 말했다. 예스24 최하나 MD는 20~30대의 LP 구매 증가 이유에 대해 “취업난과 어려운 현실 속에서 LP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위안을 얻고자 한 영향이 있다”고 봤다.

LP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축제도 호황이다. 서울레코드페어를 기획한 김영혁 김밥레코즈 대표에 따르면 2011년 첫 행사 때 30여 개에 불과했던 LP 판매 부스는 올해(17~18일·녹번동 서울혁신파크) 80여 개로 늘었다. 아이돌 기획사도 LP 제작에 관심이 높다. 마장뮤직 측은 현재 유명 아이돌 기획사와 LP 제작을 두고 막판 조율 중이다.

하종욱 마장뮤직 대표가 LP 공장을 연 이유는 “LP 시장을 미래 산업이라 생각해서”다. LP 시장의 부활은 세계적인 추세다. 영국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 LP 판매량은 320만 장으로, 음원 다운로드 매출을 처음으로 앞섰다. 하 대표는 2014년부터 LP 제작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그는 “옛 기계로 LP 제작을 하는 건 오래된 짐을 끌어 안고 가는 것 같았다”며 “좋은 LP를 찍기 위해선 기계를 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LP 재료(PVC)와 프레스 기계 개발에 20억원을 투자했다. 국내 첫 LP 프레스 기계를 만들기까지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음질 테스트에 쓴 LP만 3만장이 넘는다. 백희성 엔지니어는 LP 제작의 핵심 기술인 도금 과정 등에 대한 노하우를 옛 제작 명인에 전수하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백 엔지니어는 “노하우 전수 거절도 여러 번 당했다”며 “충북 괴산의 시골까지 찾아가 명인을 만나 LP (원판) 커팅 기술을 간신히 배웠다”며 웃었다.

백희성 마장뮤직 엔지니어가 LP를 찍는 원본 틀에 홈을 새겨 음악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옛 LP 장인들을 만나 도금 작업 등의 노하우를 익혔다. 마장뮤직 제공
백희성 마장뮤직 엔지니어가 LP를 찍는 원본 틀에 홈을 새겨 음악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옛 LP 장인들을 만나 도금 작업 등의 노하우를 익혔다. 마장뮤직 제공

높은 제작 단가, 불량률 낮추는 게 대중화 숙제

자리 잡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량 생산이 불가해 독일과 체코보다 제작 단가가 높은 게 흠이다. 제작 단가를 낮추지 못하면 5만원 대(조동진 6집 LP)에 이르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소비층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불량률을 낮추는 것도 숙제다. 2014년까지 국내에 LP 공장이 있었지만 많은 음반 제작사가 해외에 LP 제작을 맡긴 건 불량률이 높아서였다. 한 가수 기획사 대표는 “조용필의 19집 ‘헬로’ LP를 국내 공장에 맡겼더니 불량률이 높아 초반에 고객 항의가 꽤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불량률을 얼마나 낮추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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