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지평선] 네포티즘

입력
2016.11.21 20:00
0 0

아시아ㆍ남미의 적폐 중 하나가 족벌정치다. 소수 정치가문이 권력을 세습하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부녀 대통령, 부부 총리, 모자 대통령이 유독 많다. 독재정권이 민주정부로 바뀌어도 이런 구도는 바뀌지 않는다. 마르코스에 암살된 남편의 후광으로 첫 여성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에 이어 아들 베니그노 아키노 3세로 권력이 이어진 필리핀이 대표적이다. 족벌정치 청산을 내세웠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 역시 지방이긴 하지만 다바오에서 아버지는 주지사로, 자신은 시장을 지냈고, 딸과 아들이 현 시장ㆍ부시장을 물려받은 토호다.

▦ 네포티즘(nepotismㆍ족벌주의)은 조카(nephew)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순결서약으로 합법적 자식을 가질 수 없었던 가톨릭 교황이나 대주교가 자신의 조카에게 고위직을 나눠 주는 관행에서 나온 말이다. 대표적 인물이 교황 칼릭투스 3세다. 그는 조카 둘을 추기경으로 임명해 교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두 조카 중 하나가 이를 발판으로 후에 교황 자리까지 오른 알렉산더 6세다. ‘가장 부패한 교황’이라는 혹평을 받는 알렉산더 6세는 자신이 그랬듯이 정부(情婦)의 남자형제를 추기경에 임명하는 등 권력놀음에 급급했다.

▦ 미국도 족벌정치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할 때 거론되는 인물이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와 6대 대통령인 그의 장남 존 퀸시 애덤스다. 둘 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자신의 동생인 로버트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도 비슷하다. 미국 상원의원 100명 중 가족이나 친척이 공직 경험이 있는 사람이 3분의 1이라고 한다. 지금도 클린턴 가문, 부시 가문 등 엘리트 정치가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정권 인수위원회에 자신의 딸과 아들, 사위 등을 중용하면서 ‘신 네포티즘’ 논란이 일고 있다. 네포티즘을 금지하는 연방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자녀들이 “공식직책을 맡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들에게 1급 기밀 접근권을 주는 것을 검토한다고 해서 또 구설에 올랐다. 인사이더를 개혁하겠다는 아웃사이더의 외침과는 맞지 않는다. 족벌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공적 권력의 사유화다. 그런 면에서 보면 비선을 끌어들여 국정을 사유화한 것도 공화국 정신에 어긋나는 네포티즘 아닌지 모르겠다.

황유석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