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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트럼프의 감성 지능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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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트럼프의 감성 지능 결여

입력
2016.09.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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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 대통령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미국 공화당 정부에서 일했던 전직 국가 보안 고위 공무원 50명이 이번 대선의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공개서한을 지난달 발표했다. 그들은 편지에 “대통령은 훈련이 잘돼 있어야 하고 감정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하며 심사숙고 후 행동해야 한다”고 썼다. 간단히 말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에 성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대 리더십 이론에 따르면 트럼프는 감성 지능이 부족하다. 감성 지능이란 지도자가 자신의 개인적 열정을 드러낼 통로이거나, 타인을 매료시킬 수 있는 자제력과 단련, 공감 능력을 말한다. 감정은 이성적 사고를 방해할 뿐이라는 낡은 견해와 달리 감성 지능을 중시하는 이론에 따르면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능력은 사고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준다.

이런 개념은 현대적인 것이지만 아이디어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실용적인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리더십에서 감성 지능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남북전쟁 참전 군인으로 무뚝뚝한 성격의 올리버 웬들 홈스는 1930년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집권 당시 연방 대법관이었다. 루스벨트는 홈스와 하버드 동창으로 학생 시절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막 취임한 루스벨트에 대한 인상을 묻자 홈스 판사는 이렇게 농담했다. “지성은 이류, 성품은 일류.” 대부분의 사학자는 루스벨트가 지도자로서 성공한 것이 그의 감정적인 능력 때문이지 분석적 지능지수(IQ) 덕분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지능을 측정하려고 100년 이상 노력해왔다. 일반적인 IQ 검사는 언어적 이해와 지각적 추론의 능력치를 측정한다. 하지만 IQ 지수는 인생의 다양한 성공을 단지 10~20%만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은 80%는 시간이 흐르면서 작동하는 수백 가지의 요인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감성 지능이 그중 하나다.

일부 전문가는 감성 지능이 전문적 기술이나 인지 기능보다 두 배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그보다는 덜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감성 지능의 두 가지 차원인 자제력과 공감 능력이 어떻게 서로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 견해가 갈리기도 한다. 일례로 빌 클린턴은 자제력이 낮은 반면 공감능력이 뛰어났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리더십에서 감성 지능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리처드 닉슨이 루스벨트보다 IQ가 높았을지는 몰라도 감성 지능은 훨씬 낮았을 것이다.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카리스마를 강화하거나 변화하는 맥락 속에서 개인적 매력을 부각하기 위해 감성 지능을 이용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주는 인상을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표현한다. ‘성공을 위한 옷차림’도 그래서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청중들에 맞춰 다른 옷차림을 한다. 로널드 레이건의 측근들은 인상 관리에 있어서 탁월했던 거로 유명했다. 조지 패튼처럼 용맹했던 장군도 거울 앞에 서서 찡그리는 표정을 연습하곤 했다.

개인적 인상을 성공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훌륭한 연기자들이 가진 감정적 훈련과 기술이 필요하다. 연기와 리더십은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드러내는 능력과 자제력의 결합이다. 이런 측면에서 레이건이 할리우드 배우로서 경험했던 것은 큰 도움이 됐다. 루스벨트 역시 완벽한 연기자였다.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를 절며 고통스럽고 힘겹게 움직여야 했지만 루스벨트는 웃는 표정을 유지했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다.

다른 영장류가 그렇듯 인간은 지도자에게 관심을 집중하게 마련이다. 기업 최고경영자나 대통령이 이 점을 인식하고 있든 아니든 그들이 보내는 신호는 늘 면밀하게 관찰된다. 감성 지능은 그런 신호를 인지하고 통제하는 것 그리고 개인의 심리적 요구가 정책을 왜곡시키는 것을 막아주는 자기 수양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닉슨은 외교 정책에서 효과적으로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 불안을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한 나머지 ‘적대자 명단’을 만들었고 결국 몰락했다.

트럼프는 감성 지능 중 일부 기술을 가지고 있다. TV 리얼리티 쇼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연기자로서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언론의 높은 관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쓰인 빨간 야구모자를 쓰고 나타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발언을 교묘하게 사용하며, 승리를 쟁취하는 편법을 사용한다. 그는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고, 공짜 홍보 효과를 누리기 위해 이런 발언을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제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번 대선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세계정세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닉슨과 달리 외교를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훈련이 부족하다는 점이 알려졌다.

트럼프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약한 자를 못살게 괴롭히는 불량배로 평판이 자자하다. 하지만 불량배 캐릭터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로더릭 크레이머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가 지적했듯이 린든 존슨 전 대통령도 불량배였고,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가도 불량배 스타일이다. 하지만 크레이머 교수는 그런 인물이 다른 이들을 자극시켜 자신을 따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전이 있는 불량배’라고 평가한다.

트럼프는 자기도취에 빠져 자신에 대한 비판과 비난에 대해 과잉반응하며 종종 역효과를 낳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이라크전서 사망한 무슬림 병사의 부모와 설전을 벌였고 폴 라이언 하원의장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자 그와 옹졸한 싸움을 벌였다. 이럴 때마다 트럼프는 자신이 주장한 메시지를 스스로 깔아뭉갰다.

감성 지능이 부족한 탓에 트럼프는 공화당에서는 물론이고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외교 정책 전문가의 도움을 잃게 됐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거나 구분할 의지가 없다. 견해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제력이 부족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비판을 참지 못한다.” 홈스 판사가 말했듯 트럼프는 이류 성품으로 인해 자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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