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승준 기자

등록 : 2018.04.26 17:05
수정 : 2018.04.26 19:22

공황장애 마비 딛고… 11년 만에 돌아온 가수 임현정

신곡 ‘사랑이 온다’로 활동 재개… “내게 충실한 게 아름답다는 걸 깨달아”

등록 : 2018.04.26 17:05
수정 : 2018.04.26 19:22

11년 만에 돌아온 가수 임현정은 “예전엔 나를 크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이젠 다르다”고 말했다. 감성공동체 물고기자리

‘사랑은 봄비처럼…’의 반전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이제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노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2003)은 헤어진 연인을 위한 이별 찬가로 불리며 인기였다. 값싼 격정 대신 관조로 관계의 허망함을 나직하게 노래해 듣는 이들의 마음을 더 아리게 했다.

“사실 ‘행복했고 미안하다’며 툭 떠나는, 이런 사람 만나지 말라는 취지에서 쓴 노래였어요.” 25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가수 임현정(44)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 지 15년 만에 곡에 얽힌 반전 비화를 들려주며 웃었다.

임현정은 ‘첫사랑’(1999) 등으로 인기를 누린, 동아기획 출신 싱어송라이터다. 동아기획은 조동진(1947~2017)을 비롯해 김현식(1958~1990), 들국화, 한영애, 윤상, 이소라, 유희열 등이 거쳐 간 1980~90년대 유명 음반 기획사다.

“농사 짓고 싶다 생각도… 누군가에 기억되기 싫었다”

2006년 이후 무대를 떠난 임현정이 11년 만에 가요계로 돌아왔다. 지난 16일 신곡 ‘사랑이 온다’를 내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돌연 자취를 감춘 데는 “성공에 대한 압박”이 컸다. 5집 ‘올 댓 러브’의 흥행 실패에 따른 창작자로서의 자책은 그를 옥죄었다. 당시 임현정의 마음은 사막이었다.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오스트리아 등으로 여행을 떠났고 유학을 고민했다. 스콧ㆍ헬렌 니어링 부부가 쓴 책 ‘조화로운 삶’ 등을 보며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세상에서 벗어나려 했던 방황의 시기, 악재는 겹쳤다. 2008~2009년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마음의 병은 몸까지 망가뜨렸다. 임현정은 “2012년에 갑자기 심장이 뛰고 상체 한쪽이 마비돼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몸을 휠체어에 의지할 정도였다. 면역 질환까지 겹쳐 마음은 더욱 어두워졌고, 세상과 벽을 쌓기 시작했다. 임현정은 2010년에 접어들어 인터넷 포털사이트 인물정보에 담긴 자신의 프로필 삭제 요청까지 했다. 그는 “내가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싫었던 시기”라고 옛 고통을 꺼냈다.

나락에 빠진 임현정을 끌어 올린 건 결국 음악이었다. 임현정은 “누워 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피아노로 가 만든 곡이 ‘사랑이 온다’”라고 했다. 어두운 노래를 주로 썼던 임현정은 신곡에서 “하늘을 난다 숲을 걷는다 우리는 춤춘다”라며 행복을 나눈다. 전인권 등 주위 음악인들의 음악을 계속하라는 권유도 재기에 큰 용기가 됐다.

“행복해지려 음악을 했는데 남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망쳤어요. 나이가 들며 내가 남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현재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걸 깨달았죠. ‘사랑이 온다’는 그래서 내게 거는 주문이었어요. 이 곡을 계기로 다른 분들도 스스로 같은 주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어요.”

꽃을 들고 신곡 ‘사랑이 온다’ 프로필 사진을 찍은 가수 임현정. 그는 인터뷰 장소에서 만난 기자들에게도 꽃을 선물했다. 감성공동체 물고기자리

‘양철북’ ‘가위손’ ‘은하철도 999’… ‘괴짜’ 임현정

임현정은 럭비공 같았다. 생각이 자유로워 어디로 튈지 몰랐다. ‘여자 이장희’를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앨범 제목을 보면 어려서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를 좋아했다는 그의 괴짜 같은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임현정은 1집을 ‘양철북’으로, 2집은 ‘가위손’으로, 3집은 ‘은하철도 999’로 제목을 달았다. 임현정은 “음반사와 1집 계약했을 때부터 기획했던 일”이라며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양철북을 두드리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던 (소설 속)오스카가 나라 생각해 1집을 ‘양철북’으로 지었어요. 2집 제목은 사람들을 도와주다 갑자기 범죄자로 몰려 이방인으로 쫓겨나게 된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을 모티프로 했고, 3집엔 결국 은하계를 떠나게 된다는 콘셉트로 ‘은하철도 999’를 제목으로 잡았죠.”

모던 록, 전자 음악에서 어쿠스틱으로

데뷔할 때부터 떠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니. 임현정은 음악도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대중적으로는 ‘첫사랑’과 ‘사랑은 봄비처럼…’ 같이 발라드 음악이 큰 사랑을 받았지만, ‘내버려둬’(1996)에선 강렬한 록을, ‘은하철도 999’(2000)에선 차분한 전자음악을 선보이며 실험을 거듭했다. 마지막 앨범이었던 5집에 실린 ‘사랑의 향기는 설렘을 타고 온다’에서는 보사노바풍의 재즈곡을 만들어 변화를 줬다.

임현정의 창작 재능은 동료들이 먼저 알아봤다. 윤도현이 지난 2월 낸 ‘널 부르는 노래’는 임현정이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까지 했다. 임현정은 요즘 어쿠스틱 소리에 푹 빠져 산다. ‘사랑이 온다’의 멜로디도 현악과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오롯이 채웠다.

“3집 이후 모던록 음악도 잘 안 들었어요. 이펙터(소리증폭기)를 써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내는 절 보면서 ‘이게 과연 모던한 일인가’란 생각을 하게 됐죠. 언젠가 여행을 갔는데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그렇게 좋은 거예요. 편하고요. 점점 자연의 그리고 자연스러운 소리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임현정은 “내년 가을”에 정규 앨범을 낼 예정이다. 단독 공연도 계획 중이다. ‘삐딱이’었던 그의 음악 여정은 새로 시작됐다.

“새 앨범 키워드는 ‘나에게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예요. ‘사랑이 온다’란 주문으로 시작했고요. 가장 자연스러운 앨범을 내도록 하려고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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