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9일 밤 14번 환자 조사 위해 조사관 3명 응급실 도착했지만
"소독" 이유로 1시간 이상 기다려… 응급실 환자 명단 제출도 4일 걸려
"공권력 가진 당국 직무유기... 검·경 수사 통해 진실 규명해야"
삼성서울병원에서 5월 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의심환자가 발견된 후 병원 측이 보건당국의 역학조사를 막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병원 측의 비협조적 태도도 문제지만, 역학조사 책임이 있는 정부가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한 것이 방역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보건당국의 한 관계자는 “삼성서울병원의 초기 방역실패에 대해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권이 있는 조직에서 철저히 파헤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1일 중앙메르스대책본부 즉각대응팀과 삼성서울병원의 말을 종합하면, 메르스 2차 확산을 부른 14번 환자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입원 사실이 확인된 것은 5월 29일이다. 이날 밤 11시30분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 3명이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병원 측의 출입 통제로 한 시간 후에야 병원에 들어갔다. 당시 응급실이 방역 소독 중이라 역학조사관들이 “기다리겠다”고 말했고, 소독이 끝난 후 상황실에서 14번 환자에 대해 설명을 듣고 역학조사를 시작했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그러나 14번 환자와 응급실에 함께 있었던 다른 환자 및 보호자들에 대한 자료는 병원이 보건당국에 30일부터 제출했으나 전화번호가 누락된 사람들이 있었다. 병원 측은 4일이 지난 6월3일에야 접촉자 명단을 모두 제출했다. 결국 최소 5~7일 동안 방역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이 사이 14번 환자 접촉자들은 전국의 다른 병원으로 가거나 격리되지 않은 채 일상생활을 했고, 이에 따라 메르스 방역망은 다시 뚫렸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학조사에 적극 협조하지 않은 삼성서울병원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를 방기한 보건당국의 잘못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메르스 즉각대응팀의 한 관계자도 “병원 측이 출입을 통제하고 자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면 보건당국이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제대로 역학조사를 했어야지, 협조를 안 한다고 조사를 안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삼성병원의 방역 실패는 정부와 병원 양 측 모두 문제가 있지만, 70%는 보건당국의 책임”이라고 했다. 현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장과 지자체장은 감염병 유행 우려가 있을 때 지체 없이 역학조사를 해야 하고, 병원과 의료진은 역학조사업무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병원 등이 역학조사를 거부 또는 방해하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정부의 삼성서울병원 역학조사에 대해서는 이미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부실하게 진행됐을 수 있느냐”는 의혹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부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보건당국 인사가 ‘내부에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막으려는 인사가 있다, 보건당국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고 전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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