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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결사의 자유와 연대의 책무

입력
2017.05.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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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996년 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경제위기가 엄습해 오면서 사람들이 정부와 시장의 한계를 체감해 가고 있던 무렵이다. 마침 미국에서 오래 살다 귀국한 한 교포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한국 사회발전을 위해 어디에 희망이 있냐라는 그의 질문에 나는 ‘노동조합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즉시 답했다. 질문자는 이내 의아해 했다. 미국에서 노조원이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이미지인데 한국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매우 흥미롭다는 거였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핵심협약(87조)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세계적으로 극소수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산업선진국 두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과 미국이다. 두 나라가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맥락은 다르다.

미국은 시장에서 비즈니스의 자유를 최우선시 하는 나라로, 노동조합의 권력 카르텔이 커지면 시장을 왜곡할 여지가 있다는 우려를 사회구성원들이 전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교포의 시각도 노조에 대한 보통의 미국인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국은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과의 대립을 지속하면서 형성된 뿌리 깊은 반공주의 이념과 국가 주도의ᅠ경제사회 시스템 운영방식이 지배화되면서, 노동조합뿐 아니라 자유로운 결사체 일반의 활성화를 사실상 터부시해 왔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노조조직화를 포함한 노동기본권의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인식도 정책당국과 사회주류층들에게 폭넓게 수용되었다.

20년 전 노동법 날치기에 분노해 떨쳐 일어나 총파업을 전개한 한국 노동조합의 함성을 지켜보면서 향후 우리사회 발전의 기폭제로 노조가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한 생각을 큰 틀에서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규범조차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개탄한다.

헌데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결사의 자유권의 충분한 향유는 그를 통해 노동조합이 노동대중의 권리증진과 평등실현이라는 가치를 사회적으로 충실히 구현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런 노조는 자본주의가 양산해 내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들의 이해를 대변해 내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회집단, 세력들과 조화와 협력을 이루어가는 성숙한 자세를 견지해 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하기에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도 문제지만 연대의 책무를 저버리는 노조도 문제다. 대기업 노동조합 가운데 마지막 보루로 간주되다시피 했던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최근에 사실상 비정규직들을 조직원의 범주에서 떼어낸 것은 그래서 아프고 안타깝다. 마침 그 직후 삼성중공업에서는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 정규직은 쉬고 협력업체 근로자들만 일을 하다ᅠ여러 명이 대형 안전사고를 당했다.

비정규직은 이미 공식통계상으로도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하며, 최근의 추세에서는 주로 청년층과 노년층들에서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금속노조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비정규직을 노조원에서 배제시키는 비율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형국에서 만일 노동조합이 연대의 책무를 소홀히 한다면, 도무지 결사의 자유를 외칠 자격이 있을까.

2019년은 3ㆍ1운동이 100주년 되는 해임과 동시에 ILO가 출범한 지 역시 100주년 되는 해이다. 국내 노동법 체계상 충돌하는 문제를 비롯해 후속 작업이 많겠지만, 2년의 시간 동안 차분히 준비하면서 2019년을 결사의 자유 조약을 비준하는 해로 삼으면 어떨까. 그것을 계기로 노동조합 역시 비정규직을 향한 문호를 활짝 개방하며 연대지향적인 조직화 노선을 강화시키고, 정치권도 4차산업혁명에 부합하도록 중소기업들을 지원함과 동시에 노동권 개념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식으로 움직여 간다면 더욱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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