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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1분만 늦어도 징계" 주눅든 직장인들

입력
2015.08.1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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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일찍 했다고 벌칙 등 기업들 경기 침체에 기강 잡기만

강압적 근태 기준도 들쭉날쭉… 효율성 내세워 직원들 감시만

전문가 "과도한 규제로 효율 저하"

계속되는 경영 침체로 기업들이 앞다퉈 근무기강 확립에 나서고 있으나 강압적인 분위기와 들쭉날쭉한 기준 탓에 불만을 토로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계속되는 경영 침체로 기업들이 앞다퉈 근무기강 확립에 나서고 있으나 강압적인 분위기와 들쭉날쭉한 기준 탓에 불만을 토로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유명 보험사에 입사했던 박모(28)씨는 수첩을 든 사내 기업문화팀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들은 6월부터 “근무시간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들을 잡아 내겠다”며 아침 출근시간과 점심 뒤 근무시간에 1분이라도 늦는 직원들을 무작위로 적발해 수첩에 이름을 적어 갔다. 점심시간만 되면 밥을 먹다가도 시계를 쳐다 보기 바빴다. 얼마 전 퇴사한 박씨는 그때의 ‘감시’를 떠올릴 때마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박씨는 10일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며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너무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경영 침체로 기업들이 앞다퉈 근무기강 확립에 나서고 있으나 강압적인 분위기와 들쭉날쭉한 기준 탓에 불만을 토로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기업들은 일하는 시간 내 ‘딴짓’을 줄이고 업무에 몰두하면 경영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직원들에게 감시 생활을 강요하고 있다. 최근 실적 부진에 빠진 현대자동차는 6월부터 낮 12시 전 식사하러 오는 직원들을 체크하기 위해 구내 식당 앞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출근 시간대 이용을 막는다며 오전 7시50분부터 오전 9시까지 사내 카페도 폐쇄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삼성인 이러지 맙시다’ 코너를 통해 근무태도가 불량한 사원들을 익명으로 공개해 징계 수위를 밝히고 있다. 한 유명 건설사에서는 지난해 말 평소 지각이 잦은 입사 3년 차 여직원이 권고사직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회사의 ‘군기잡기’식 규제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차에 다니는 김모(31)씨는 “밥을 일찍 먹는 직원이 많은 부서는 팀장이 중ㆍ고교 선도부처럼 식당 앞을 지키는 벌칙을 받기도 했다”며 “잠깐의 여유마저 규제한다고 효율성이 얼마나 높아질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근무 시간엔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는 회사 방침이 퇴근 때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자율 출ㆍ퇴근제를 운용하는 삼성전자는 주 40시간 근무가 원칙이나 실제로 규정을 지키는 직원은 많지 않다고 한다. 얼마 전 이 회사를 퇴사한 유모(30)씨는 “일과에서 짬을 내 담배를 피울 때도 눈치를 주기 일쑤지만 정작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업무도 많고 상사 눈치를 봐야 해 자리를 뜨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국내 유명 건설사 관계자는 “출근ㆍ점심 시간을 준수하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면서도 “퇴근은 부서마다 업무 특성이 달라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고 각 부서장에 자율성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근무 기강만 강조하고 연장 근무를 권장할 경우 직원들의 사기는 더욱 떨어진다. 지난 6월 재직자들이 직접 기업을 평가하는 온라인 사이트 ‘잡플래닛’에서 798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5년 상반기 일하기 좋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1위였던 SK이노베이션이 올해 13위로 추락했다. 지난해 37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뒤 저녁 배식을 부활하고 오후 6시 퇴근 안내방송을 없애는 등 은연 중에 야근 압박을 준 것이 순위 하락의 주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쌍방향 소통이 부족한 한국의 기업 문화에서는 과도한 규제가 효율을 되레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야근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근태 관리는 결국 시간을 연장해 노동을 쥐어짜는 일밖에 안돼 피고용인의 호응을 얻기가 어렵다”며 “기업들은 퇴근 시점을 정해 놓고 하루 8시간 근무 범위 안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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