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기록으로만 봤던 영화 ‘무정’ 존재 확인했을 때 짜릿”

알림

“기록으로만 봤던 영화 ‘무정’ 존재 확인했을 때 짜릿”

입력
2017.05.29 04:40
0 0

지난해 대만서 반세기 만에 찾아

원작소설 100주기 올해 재상영

3년간 유실 한국영화 12편 발굴

“60년대 영화 손실률 55% 달해

소장 기관∙개인과 협의 어려워”

지난해 대만에서 이광수 원작소설 영화 '무정'의 필름을 찾은 최영진 한국영상자료원 코디네이터가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 보존고에서 필름을 찾은 과정을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해 대만에서 이광수 원작소설 영화 '무정'의 필름을 찾은 최영진 한국영상자료원 코디네이터가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 보존고에서 필름을 찾은 과정을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女子(여자)는 사랑에 人生(인생)을 겁니다. 無情(무정)한 세파에 몰리면서도 순결을 지키는 아름다운 마음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永遠(영원)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지난해 5월6일 대만 수린구에 위치한 대만영상자료원에서 한 흑백영화를 보던 최영진(31) 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 코디네이터. 영화 마지막 부분 여주인공 대사 자막을 본 그는 이내 확신에 찬 듯 내뱉었다. “찾았다.”

최 코디네이터는 필름이 유실돼 반세기가 넘도록 기록만 남아있던 춘원 이광수의 원작소설 영화 ‘무정’(1962)을 실제로 처음 본 당시를 ‘짜릿했다’고 표현했다. 국내 미보유 한국영화의 해외 발굴 조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손실률이 55%에 이르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한 작품을 되찾아서다. “‘무정’의 관람객 집계 결과는 전해지지 않지만, 당대 스타 최은희와 허장강 등이 출연하고, 당시 영화계를 선도한 신필름이 제작한 걸 보면 영화의 위상을 알 수 있습니다.”

대만 현지 행정절차를 거쳐 지난해 12월 국내에 들어온 ‘무정’ 필름은 음향보정과 디지털변환 작업 등을 거쳤다. 그리고 지난 23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초기영화로의 초대’ 상영전을 통해 최초 공개됐다. 올해는 1917년부터 매일신보에 연재되면서 국내 근대 문학 첫 장편소설로 평가 받는 이광수의 ‘무정’ 탄생 100주년이다.

미국 시카고 인근 노스웨스턴대에서 영화과를 졸업한 뒤 한국영상자료원에 들어온 최 코디네이터는 국내 미보유 한국영화 해외발굴 조사와 수집 업무를 2015년부터 맡고 있다. 조사와 수집은 수출 기록이 있는 한국영화 목록을 토대로 외국의 영상자료원 조사 등을 통해 진행된다.

‘무정’은 현지 개봉 제목과 감독 및 배우명의 한문 검색 등 약 6개월간 진행된 조사작업을 통해 걸러진 ‘지정’(至情)이란 작품을 실제 확인해 최종 선별했다. 그는 이 필름이 대만 국방부가 대만영상자료원에 기증한 만큼, 대만 군부대원을 대상으로 순회 상영되던 것으로 추정했다.

그가 현재까지 직접 찾아낸 작품은 모두 12편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캐나다에서 들여온 홍금보 주연의 한국과 홍콩합작영화 ‘대평원아’(1973) 등이 포함돼 있다. 올해는 4개 작품을 국내로 들여올 계획이다. “1980년대 제작 영화부터는 거의가 남아 있고, 1970년대 제작 영화도 약 80% 가량은 필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 영화들은 절반 이상이 없어요. 1965년 개봉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영화 ‘저 하늘 아래 슬픔이’ 필름조차 2014년 대만에서 어렵게 구했습니다.”

국내 미보유 한국영화의 해외수집 과정에서 가장 힘든 건 시간과의 싸움이다. 자료 조사를 통해 해외 깊숙한 곳에 감춰진 옛 한국영화를 발굴하고, 이를 국내로 반환하기 위해 소장기관이나 개인소장가와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명작이나 영화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만 목표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국내 미보유 한국영화가 많아 다른 나라의 영화 관련 기관이나 개인들의 보관작품을 불특정으로 훑는 경우가 더 많다. 이때 개인소장가가 과도한 금전적 사례라도 요구하면 일은 극도로 꼬인다. 필름을 복사만 하겠다고 읍소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데, 주로 우리만 다른 나라 영상자료원에 한국영화를 넘겨달라고 하다 보니 가끔 눈치 보일 때도 있습니다. 업무특성상 우리가 확실히 ‘을’이라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으러 노력합니다. 하하하.”

지난 23일 첫 공개에 이은 ‘무정’의 마지막 일반 공개는 오는 31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무료 진행된다. 이태무 기자 abcdef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