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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팔봉비평문학상을 위한 변명

입력
2017.06.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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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팔봉 김기진 선생이 육필원고 정리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생전 팔봉 김기진 선생이 육필원고 정리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팔봉비평문학상은 팔봉 김기진 선생이 작고했을 때 통장에 남아 있던 돈으로 만들었다. 팔봉 선생이 오랫동안 ‘초한지’ 등의 인세와 ‘문단회고록’ 등의 원고료를 차곡차곡 모은 것이었다.

30여 년 전 유족들이 의논해 왔을 때 나는 비평문학상 제정을 권했다. 당시 ‘실천문학’에서 팔봉 선생의 친일문제를 거론, 유족들은 세간의 논란을 우려했지만, 나는 잘못 속에 포함된 진실이 진실 속에 들어 있는 진실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에서, 친일 문제를 민족 배신이라고 여기는 선악의 도식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설득했다.

개항 이후 우리나라가 걸었던 문명화/근대화의 길은 그 내면에 친일의 길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최남선 이광수 김기진 임화 백철 유진오 최재서 등은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은 문명화/근대화에 있다고 생각하고 계몽의 길을 정력적으로 달려갔다. 그렇지만 그들은 일본을 모방하고 일본으로부터 배우는 길이 제국주의 침탈의 허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경계하지 못했다. 손기정이 뛰어난 마라토너가 되는 것 속에, 유진오가 경성제국대학에서 탁월한 수재로 성장하는 것 속에, 최재서가 일본인 교수가 아껴 마지않는 영문학자가 되는 것 속에, 김기진이 아소 히사시의 말과 글에 감동하는 것 속에, 임화가 나카노 시게하루의 시를 모방하는 것 속에 그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팔봉 선생이 친일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전집에도 친일 작품을 모두 수록했다. 그렇지만 선생의 글이 무고한 우리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아서 죽게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당시 우리나라의 문인들이 쓴 친일작품 대다수는 양심과 진실에 입각해서 자발적으로 쓴 게 아니다. 지금의 북한문학에서 보듯 권력이 강요하는 관용구를 되풀이한 게 대부분이다. 신문, 잡지, 방송 등에서 매일같이 접하던 흔해빠진 말들을 적당히 열거한 것이 친일작품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두고 ‘미영격멸’, ‘천황폐하의 성은’ 등의 단어에만 주목해 대단한 친일인 양 판단하거나 여기에 감동해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다고 생각한다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간 팔봉 선생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나라를 망국으로 이끈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역사적 연구와 우리자신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수백만의 우리민족을 하와이로, 멕시코로, 만주로, 일본으로, 그리고 태평양 전선으로 내몬 사람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멸시와 천대 속에 죽어가도록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연구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선 말기에 국가를 피폐하게 만든 지식인들, 한일합방에 기여한 공로로 작위를 받은 수많은 지식인들의 책임이 먼저라는 생각도 한다.

팔봉 김기진 선생은 우리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사회주의라 생각하고 이 땅에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씨앗을 뿌렸지만, 시청 앞 광장에서 자신이 열정적으로 전파했던 이데올로기로부터 인민재판을 받아 타살 당할 뻔한 비극을 겪었다. 우리민족의 해방과 행복을 위해 선택했던 이데올로기가 거꾸로 선생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의 말처럼 우리는 교훈을 얻기 위해 과거를 공부한다. 팔봉비평문학상을 만들어서 수상을 하는 이유는 팔봉 선생처럼 근대문명의 사다리를 힘차게 걸어 올라간 사람들이 마주쳐야 했던 폭력적 침략의 얼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고, 내용과 형식논쟁에서 선생이 보여준 문학은 어떤 절박한 현실 앞에서도 문학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고, 선생의 온몸에 남아 있는 타살의 흔적이 말해주듯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라는 증언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가 우리에게 일정한 교훈을 주고 있는 한 팔봉비평문학상은 그 존재이유를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1989년 5월 13일 팔봉의 문우이자 팔봉기념사업회 회장인 소설가 정비석(가운데)이 김창열(오른쪽) 한국일보 사장에게 팔봉비평문학상기금 1억2,0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9년 5월 13일 팔봉의 문우이자 팔봉기념사업회 회장인 소설가 정비석(가운데)이 김창열(오른쪽) 한국일보 사장에게 팔봉비평문학상기금 1억2,0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홍정선 팔봉비평문학상 운영위원회 간사ㆍ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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