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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무처럼 곧게 살고 싶다

입력
2017.06.0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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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수직으로 자란다. 이즈음 돋아난 소나무 새순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가지 끝이 어디이건 돋아나는 새순은 신기하게도 하늘을 향해 곧게 솟는다. 잘 자란 반송들은 10㎝ 넘는 수많은 새순이 열병식 하듯 둘러싼 커다란 왕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생명의 환희를 보여주는 장관이다. 소나무는 암수동체이지만 바람결에 실려 온 다른 소나무의 꽃가루를 받아 솔방울을 맺는다. 오래된 왕조의 몰락이 문란한 근친혼의 열패 때문이었음을 잘 알고 있나 보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 시인의 ‘윤사월’이 푸르디푸른 하늘을 휘젓는 끈질긴 생명력의 금빛가루인 송홧가루와 함께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자연은 이렇게 풍요로운데 옛날 농촌에서는 곡식이 바닥난 춘궁기를 보내야 하는 시절이기도 했다. 이팝나무의 하얀 꽃이 쌀밥처럼 터지기 시작하면 모내기를 준비한다. 숲 어디에도 흐드러지게 피는 아카시 꽃 향기는 밤이면 여인의 체취처럼 더욱 짙어지는지 허기진 마음에도 꿀처럼 달았다. 이팝나무는 복원된 청계천 가의 가로수로 시작하여 이젠 배고픔의 전설 대신 전국의 도회지 길가를 하얀 꽃으로 수놓고 있다. 사방사업과 땔감의 임무가 끝났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수종교체 대상이 된 아카시 나무는 안타깝게도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 활짝 폈네”라는 동요 속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나무는 뿌리내린 땅의 경사와 관계없이 하늘로 곧게 치솟는다. 숲의 스카이라인은 나무 키만큼의 뿌리내린 땅바닥의 모양 그대로이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 평지의 숲과 산 구릉의 숲은 딛고 선 환경을 극복한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뿌리를 박고 우뚝 서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맨바닥에는 꿈틀거리는 생명 그대로의 감동이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극복해야 할 인간조건도 그러할 것이다.

엊그제 프로야구에서 기아타이거즈의 최원준 선수가 연장전에서 극적인 역전 만루홈런으로 미세먼지로 답답한 하늘을 통쾌하게 뚫었다. 앞의 3차례 만루 기회에서 애를 태웠던 청년의 스무살 자서전은 이렇게 써야 했다. 대타로 교체하지 않고 선수를 믿어준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도 대단했지만, 그의 울먹이는 벅찬 소감은 “프로야구에 스카우트해줘 감사하다”였다. 열정의 그라운드에서 그렇게 뛰고 싶었을 것이다. 15억 원에 영입한 4번 타자가 아닌 연봉 3,100만 원의 그가 승전보를 올렸다. 그랜드슬램을 꿈꾸며 2군 생활에서 얼마나 야구배트를 갈고 닦았을까. 화려한 스타선수의 틈에서 고졸신화의 자리를 차지한 젊은 영웅에게 박수를 보낸다. 얍삽하게 살지 말자는 정면승부의 그의 기상 때문이라도 아직은 살 만한 사회인 것이다.

어느 숲이든 나무들은 햇볕을 차지하기 위한 생존경쟁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 빽빽하게 심은 나무는 가녀린 채 햇볕을 향해 위로만 치솟는다. 수간거리가 확보되지 못해 모두 고생만 하다가 쓸모 없는 나무가 된다. 밀집된 도시의 탐욕을 좇아 무한경쟁하는 공간인 아파트에 사는 우리 모습이 스친다.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참나무류에 쫓겨 산 능선으로 올라간 소나무들이 보여주는 생태계 현실을 되새겨야 한다. 나무도 살기 위해 움직인다. 굽은 나무는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살아남은 궤적이다. 그래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뒤틀린 와불(臥佛) 소나무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이 만든 사치품이다. 모양을 낸다며 굵은 철사 줄로 가지를 동여맨 분재 소나무는 잔인한 식물학대일 수 있다. 나무는 땅에 뿌리박고 곧게 크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무처럼 곧게 살고 싶다.

조상호 나남출판ㆍ나남수목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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