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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풍전등화 한국경제

입력
2018.07.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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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 좀 준비해 놓으세요.”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지인이 지난 6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발발하자 건넨 말이다. 총알이란 ‘현금’을 일컫는다. 세계 경제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한판 싸움이 시작된 만큼 앞으로 중국 경제에 위기가 오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중국 의존도가 큰 한국도 휘청거릴 공산이 크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그 때 준비해 둔 ‘총알’로 가격이 급락한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면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논리다. 지인은 이미 외국인 투자자는 이런 큰 그림 아래 움직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외국인은 올 들어 우리나라에서 주식을 4조원이나 순매도하면서 채권은 12조원이나 사 들였다. 이는 앞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채권을 판 돈으로 주식을 다시 사기 위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중 충돌은 일찍부터 예견돼 왔다.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게 되면 기존 강대국과 갈등이 커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신흥 강대국이 기존 질서와 체제에 도전하고 기존 강대국의 이익을 침해할 경우 전쟁은 불가피해진다. 역사 상 세계 1,2위 강대국 간 전쟁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사실 중국은 이런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써 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향해 줄기차게 요구한 게 바로 ‘신형대국관계’를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신구 강대국 간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구형대국관계를 청산하고 상대방 이익을 서로 존중하는 새로운 대국 간 모델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중국의 바람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산산조각 났다.

그렇다고 미중 간 전쟁이 곧장 파국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중국은 미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잘 안다. 중국의 국방예산은 미국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중국 최고 지도부의 자녀들이 하나같이 미국에서 공부했거나 유학 중이라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내적으로는 국가적 자존심을 구길 수 없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는 것처럼 큰소리를 치긴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가급적 미국과 전쟁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다. 지금 미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잘 안다.

이를 간파한 트럼프 대통령은 더 강하게 나갈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타고 난 협상가가 놓칠 리 만무하다. 이렇게 미중 경제 전쟁은 파국으로 가지도 않겠지만 쉽게 끝나지도 않은 채 장기화할 확률이 크다. 어쩌면 앞으로 미중 간 충돌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다. 사실상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신세를 지고 있는 한국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판이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에게 계속 “도대체 어느 편이냐”고 답을 강요할 것이다. 양국에 대한 의존과 노출을 줄여 나가는 게 우리의 길이다. 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상황이 이런 데도 우리 경제부처들은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하려 했던 회의(제2차 규제혁신점검회의)마저 취소했겠는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지난달 말 소리 없이 일몰된 것은 황당 그 자체다. 일몰 전 미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금융위원회의 심각한 직무유기다. 외국인의 채권 매입을 우리 시장을 신뢰하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은 기획재정부의 과도한 아전인수다.

사실 한국 경제는 이미 미중 전쟁이 아니라도 어려운 처지였다. 기업은 활력을 잃었고 신성장 동력은 안 보이며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 이런 풍전등화 상황에도 관료들은 “큰 영향은 없다“, “아직은 괜찮다”는 말만 한다. 위기는 위기 의식이 없을 때 온다.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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