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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의 프레임] 냉소(冷笑): 짧은 쾌감, 긴 역풍

입력
2017.04.1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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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 그 차가운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특히나 좋은 의도로 한 일이 ‘뭔가 숨은 꿍꿍이가 있을 거야’라는 냉소적 반응으로 돌아오면, 당사자도 타인에 대해 냉소적 생각을 갖게 되는 냉소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거와 그의 아내가 전 재산의 99%를 평생에 걸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그들에게 돌아온 건 존경만이 아니었다. 평생에 걸쳐 기부하겠다는 말이 모호하다거나, 세금을 줄이기 위한 꼼수일 수 있다거나, “인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한다는 기부의 목표가 추상적이라느니, 기부금의 사용처를 자신들이 정하겠다는 건 이기적이라는 등 언뜻 보면 합리적 의심인 듯 보이지만, 본질상으로는 매우 냉소적인 반응들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그럴 바에 아예 기부하지 말라는 비난조의 반응도 섞여 있었다.

왜 인간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의 의도와 동기를 의심하고 경계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냉소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목일까? 덕목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떠맡아야 할 사회적 의무 같은 것일까? 만일 냉소가 덕목도 의무도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 안의 냉소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한 가지 힌트를 냉소주의자들이 겪게 되는 심각한 역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사회가 불신이 가득한 사회라면 냉소적 불신은 환경에 적응하는 한 방식일 수도 있다. 만일을 대비한 의심과 준비는 자신에게 닥칠 손실과 상처를 예방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냉소의 이런 잠재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를 보면, 일반적으로 냉소, 특히 냉소적 불신은 혜택을 안겨주기보다는 역풍을 불러온다. 냉소적 불신이란 선한 행동 이면에 이기적 욕심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칭한다.

우선 냉소적 불신이 가득한 사람은 늘 기분이 좋지 않다. 우울을 경험할 가능성도 높다. 한 마디로 행복하지 않다. 그뿐 아니라 냉소주의자의 특허인 적대적 태도, 공격성, 분노는 건강에도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냉소적 불신은 심지어 치매 가능성을 높인다.

냉소의 역풍은 인간관계에도 불어 닥친다. 냉소적인 사람들에게는 협동의 기회가 잘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선뜻 함께 일하자고 손을 내밀지 않는 것이다. 늘 기분이 언짢고, 별 것 아닌 일에도 과도하게 화를 내며 적대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다. 냉소주의자들 역시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나누고 베풀고 협동하는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공동체에서 냉소주의자들이 설 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게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인간관계에서 그들은 커다란 손해를 입게 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냉소적인 사람들은 이 같은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경제적 수입에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교류 관계에서 서로 간에 제공하는 ‘기회’가 그들에게는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냉소적인 사람들이 일은 잘하지 않을까? 냉철하고 합리적이고 경쟁적이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않을까라고 질문해볼 수 있다. 다행히도 (?) 연구 결과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들은 다른 구성원들이 자기를 음해하지 않을까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타인의 흠을 잡는 데 몰두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강한 경쟁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탁월성 자체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들은 또한 합리적 타협을 잘 하지 않는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이들이 있는 곳에는 필요 이상으로 갈등이 증폭되어 건설적인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 자연스러운 의견 차이가 이들이 개입하면 전쟁으로 돌변한다.

만일 이들이 리더라면 어떨까? 구성원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감시하고 평가하는 데 과도하게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유무형의 장치를 만드는 데도 집착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들의 비즈니스 성공 가능성이 낮은 이유다.

인간 본성을 어떻게 보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인간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타인에게 늑대와 같은 존재(Homo homini lupus)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인간 본성의 선한 면을 믿는다. 착한 일을 한 사람들에게 의심과 경계의 차가운 눈초리를 보내기보다 지지와 존경의 따뜻한 격려를 건넨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 동안 냉소적 불신을 조장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은 우리 몫이다. 신뢰가 낮은 사회가 경제 발전과 정신적 행복 면에서 고전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인 수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냉소적 인간은 자신의 냉소로 인해 짧은 쾌감을 누릴지는 몰라도 건강, 인간관계, 수입, 성취 등 삶의 많은 분야에서 거센 역풍을 만나게 된다. 냉소적 불신은 의식의 미세먼지 같은 것이다. 늘 뿌옇게 세상을 보고 있으니 좋을 게 없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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