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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 칼럼] 배신의 정치와 지역주의의 위기

입력
2015.07.0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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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한국 정치에는 두 종류의 배신의 정치가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여당에서 일어나는 엘리트 차원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광주 시민의 “반란”이 그것이다. 얼핏 보아 전혀 다른 현상으로 보이지만 이 두 배반의 이면에서 변모하는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지역주의 종말의 씨앗을 볼 수 있다.

배반의 시작은 여당에서보다 야당 즉 호남에서 일찍 시작되었다. 2012년 대선에서 한화갑의 배반이 그것이다. 한화갑 전 대표의 발언의 핵심은 박근혜 후보 지지보다 호남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한 민주당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데 있다. 바깥으로는 배반으로 보였겠지만 그의 발언은 변해 가는 호남 밑바닥 정서를 반영한 것이었다. 호남 지역주의가 내포하는 근본적 한계 즉 상대적 인구 감소와 전국적 후보의 결여 등으로 호남 정치인들이 호남의 일반대중들보다 먼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반면 여당에서 벌어지는 배신의 정치는 좀 의외다. 영남지역주의의 특징은 호남지역주의에 비해 그 강도가 낮다. 1987년부터 2012년 대선까지 평균 지지율도 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남 지역의 경우 자기 지역을 대표한다는 후보에 대한 지지는 평균 69%이고 호남지역에서 받은 지지율 평균은 7%에 불과했다. 호남지역의 경우 그 수치는 각각 88%와 15%이다 그러나 영남 지역의 상대적 크기 등에 의해 영남 정치 엘리트들의 지역 의존도는 호남 지역에 비해 더욱 견고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유승민 현상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과거 발언을 보면 이번 사태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원내대표 연설에서 그는 양극화가 초래할 공동체의 붕괴, 재벌체제의 문제와 서민의 고충,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 등을 언급하면서 진영 논리의 종말을 선언한 바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구체적으로 지역주의의 폐혜를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그의 발언에서 이미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환경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세계화와 사회복지는 근본적으로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파장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또한 사회복지제도 역시 개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하면서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당 내의 상황도 유승민 개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지역주의에 기반한 전통적 충성심과 유대 관계에 근거한 한국 정치가 그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 정치의 지역주의가 초래한 폐혜는 득표의 대상 이외의 의미가 없는 국민, 타협 없는 극단적 감정의 정치, 인재 등용의 편파성과 관료의 정치화 등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제 여야 할 것 없이 형태와 기원은 다르지만 민주주의라는 명목 하에 자신들의 생존 수단으로 여겨왔던 지역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 받고 있다.

향후 지역주의 변화 양상은 다음과 같이 점쳐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기존 지역주의에 의존한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부작용과 문제점을 안고 한국 정치가 상당 기간 표류하는 것이다. 제2의 가능성은 호남권 세력의 분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영남권 세력 자체에도 변화가 오는 경우이다. 상대적 인구의 열세는 호남 엘리트로 하여금 먼저 변화를 시도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3의 가능성은 영호남 세력의 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다. 그 결과는 제3당의 출현과 영ㆍ호남 세력의 재편성이다.

이 중 현상 유지는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제2와 제3의 가능성도 새로운 정당의 출현까지 상당 기간 혼란을 수반할 것이다. 지역주의의 극복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제 3당의 출현과 이를 통한 정치세력의 재편이 될 것이다.

현재 정치권이 겪고 있는 혼란은 단순히 사적 관계에서 나오는 배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구조와 경제, 사회, 국제체제 간의 모순에서 기인하고 있다. 한국 현실은 이의 해결을 위해 정치인들이 쉽게 빠졌던 지역주의의 덫으로부터 빠져 나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치를 지역정치의 늪에서 구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 지도자와 비전은 과연 어디서 나올 것인가?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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