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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부실 키운 정부의 무책임 개입 막으려면

입력
2016.05.1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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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해운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책임논쟁이 뜨겁다. 수조원의 국민부담이 투입되는 만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당사자인 부실기업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다음 관전 포인트는 정부와 국책은행 간 책임공방이다. 부실기업 지원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의 결정사항이다. 그러나 국책은행은 사실상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서별관회의에서 구조조정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서별관회의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청와대가 고정 멤버로 참석하고 사안별로 국책은행이 참석하는 비공개 경제금융 점검회의를 말한다. 정부는 실업을 유발하는 구조조정보다는 부실기업을 지원하여 폭탄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려는 유인이 있다. 상대적 약자인 국책은행은 이러한 정부방침을 거부하기 어렵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과거 금호그룹, STX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요구로 인해 피해를 본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정부가 개입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 해운산업의 부실이 이 지경에 이른 배경은 책임지지 않는 주체인 정부가 지원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책임 없는 영향력 행사를 늘 반긴다. 따라서 정부의 자발적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어떻게 해야 정부의 무책임 개입을 막을 수 있을까.

첫째, 국책은행을 포함한 공공기관 이사회에 정부 참여를 공식화할 것을 제안한다. 정부는 국책은행의 대주주이나 이사회에 참여치 않고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부가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해야 정부간섭이 공식화 되어 무책임 개입을 줄일 수 있다. 1990년대까지는 공기업 이사회에 공무원들이 직접 참석했었다. 그 후 공기업 이사회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정부이사제도를 폐지했으나 지나고 보니 독립성은 나아지지 않고 정부의 막후 개입만 커졌다.

둘째, 국책은행은 억울해도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더구나 국책은행은 부실기업의 분식회계를 알지 못했고 낙하산 혜택까지 누렸다. 과거 의사결정권자에 대한 책임추궁은 물론 기관 차원의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정부가 이를 강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국책은행의 팔을 비틀겠다는 뜻으로 의심받게 될 것이다. 정부 방침을 따랐다가 큰 고초를 겪는 경험은 앞으로 공공기관이 정부의 무책임 개입에 조금이라도 버틸 명분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정부 영향력 하에 있는 모든 공공기관에 고한다. 정부가 원치 않는 일을 시킬 경우, 서면증거를 반드시 남겨 놓으라고.

공기업은 이미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약아졌다. 최근 공기업이 원치 않는 사업을 요구받을 때 정부에 손실보전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정부가 광물자원공사, 석유공사의 무리한 해외자원 개발을 부추겼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안다. 그 여파는 길게 남아 작년 한 해 동안 부채비율이 석유공사는 2배, 광물공사는 32배 폭증했다. 수조원의 적자는 물론이다. 산업부는 올 3월 두 공기업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다. 조직과 인력 감축, 연봉반납, 자산매각 등이 담겼다. 경영진은 검찰 조사도 받았다.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시킨 대로 했다는 물증은 없다. 결국 공식결정권을 가진 공기업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공기업도 손해만 본 것은 아니며 조직과 예산을 늘리며 호황기를 구가했다.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두 공기업의 구조조정은 만시지탄이며 철저히 이행되어야 한다. 이는 정부의 무책임 개입에 저항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길 것이다.

금융은 창구규제 등 비공식 통제 관행이 가장 심한 부문이다. 정부의 무책임 개입에 대한 공기업의 소심한 저항이 금융권에도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모든 기관이나 개인이 자신의 권한을 자신의 책임 아래 행사하는 수평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무책임 개입은 수평사회의 적(敵)이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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