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7.07.27 16:18
수정 : 2017.07.27 17:50

[황영식의 세상만사] 보건교사의 한숨

등록 : 2017.07.27 16:18
수정 : 2017.07.27 17:50

학교보건법 떠받칠 시행령 미비 여전

추경 따른 증원은 새 발의 피에 불과

개혁의 최종 성패 미세정책이 가른다

글을 쓰다가 얼토당토않은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10여년 전 ‘언어학자가 정치인을 발가벗긴다’는 책을 칼럼에 소개하면서 저자인 아즈마 쇼지(東照二) 리쓰메이칸대 교수의 이름을 ‘히가시 테라지’라고 썼다.

책 뒤 판권장에 분명히 영어로 ‘Shoji Azuma’라고 씌어 있었는데도 그랬다. 당시 신예 작가로 각광받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를 빼고, 착오의 다른 요인을 찾을 수 없었다. 몇 년 전에는 ‘목동 행복주택’ 반대 운동의 배경을 지역이기주의라고 단정해 썼다. 후배가 쓴 관련 기사를 그대로 믿은 데다 한때 강남에 살면서 노골적 임대주택 차별을 목격한 바 있어서였다. 알고 보니 목동은 사정이 전혀 달랐다.

2주 전 ‘동네 아줌마와 급식 선생님’이란 칼럼에서는 40여년 전의 기억에 사로잡혀 직무 내용이 과거와 딴판으로 바뀐 보건교사를 ‘서무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가르치지 않는 ‘양호 선생님’이라고 썼다. 교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서무 선생님’에 대해 이런저런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양호 선생님’에 대한 확인은 빠뜨렸다. 따로 교직과목을 이수하고 임용고시를 거친, 간호사와 교사 자격증을 함께 가진 보건교사들의 자긍심을 해쳤다.

어처구니 없는 잘못의 결과, 무관심했던 보건교사의 현실에 대해 적잖이 배웠다. 전화와 문자, 이메일, 대면 대화 등을 통해 보건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과소 배치’ 문제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교육부가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만1,733개 학교 가운데 보건교사가 배치된 곳은 8,097개교(2016년 8월 31일 기준), 69%에 불과하다. 2011~2015년의 63.9~65.5%에 비하면 그나마 크게 늘었다. 2007년 개정된 학교보건법 15조 2항이 ‘모든 학교에 제9조의 2에 따른 보건교육과 학생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보건교사를 둔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학교에는 순회 보건교사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 것과는 딴판으로, 명백한 ‘위법 상태’다.

이런 위법 상태의 이유로 교육부는 ‘공공기관 총정원제’에 따른 ‘교사 총정원제’와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들어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 총정원제는 유명무실해졌다. 문 대통령의 1호 공약이라 할 일자리 늘리기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1차 대상이 공공기관이다. 머잖아 교사 총정원제도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남은 문제는 예산이고, 교육부의 의지에 달렸다. 국회가 의결정족수 소동까지 겪으며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한 결과 늘어난 일자리 가운데 보건교사는 고작 237명이다. 위법 해소를 위한 최소 소요에도 새 발의 피다.

학교보건법이 보건교사 배치를 의무화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대통령령이 정하는 일정 규모 이하’라는 법규정을 뒷받침할 시행령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도 정부의 의지 부족을 드러낸다. 언뜻 학교보건법 시행령 23조는 ‘초등학교 18학급’ ‘중ㆍ고등학교 9학급’을 모법이 요구한 ‘일정 규모’로 제시한 듯하다. 그러나 18학급 미만의 초등학교에 ‘보건교사 1명을 둘 수 있다’는 규정은 0과 1의 선택이어서, 상식적으로 0.5 수준일 모법의 ‘순회교사’에서 되레 후퇴했다. 강제조항을 임의조항으로 바꾼 것을 포함해 실질적 행정입법 미비다.

보건교사의 일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의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늘어나는 전염병과 비만 등 생활습관병의 예방, 날로 필요성이 커지는 응급처치 교육 등은 아동ㆍ청소년기가 말 그대로 ‘딱’이다. 성교육과 흡연ㆍ음주 예방교육의 중요성도 커졌다. 모두 보건교사의 직무다. 최소 ‘1교 1인 체제’는 갖춰야 할 현실적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새 정부가 제안한 거대 정책의 개혁성은 국민 다수의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개혁의 성패는 최종적으로 구체적 미세 정책의 실현에서 갈린다. 거대 교육개혁 과제에 비해 사소할 수도 있는 보건교사 확충에 정부가 한결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주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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