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민원에도 에티켓이 있다] “민원은 시민 권리지만 의무도 있다는 인식 절실”

알림

[민원에도 에티켓이 있다] “민원은 시민 권리지만 의무도 있다는 인식 절실”

입력
2017.11.22 04:40
8면
0 0

*최용범 행안부 정책관

정부, 공무원에 항상 친절 강조해

단호히 대응 못하는 원인 중 하나

악성민원 소송할 땐 비용 등 지원

*허경옥 성신여대 교수

나도 공무원 될 수 있단 생각으로

감정노동자 이해하는 자세 필요

민원 폐해 홍보하는 것도 효과적

*백병성 소비자문제硏 소장

민원인은 소통 기대하고 왔는데

‘우리 소관 아니다’식 대응도 문제

부서 칸막이 없앤 열린 행정 필요

전문가들이 16일 민원문화 개선을 위한 좌담회에 참석해 악성민원 근절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앞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창만 한국일보 지역사회부장, 백병성 소비자문제연구소 소장, 최용범 행안부 공공서비스정책관,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 서재훈기자
전문가들이 16일 민원문화 개선을 위한 좌담회에 참석해 악성민원 근절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앞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창만 한국일보 지역사회부장, 백병성 소비자문제연구소 소장, 최용범 행안부 공공서비스정책관,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 서재훈기자

민원은 시민으로서의 소중한 권리다. 하지만 어떤 권리든 지나치면 ‘남용’이 된다. 같은 내용의 민원을 반복해 제기하거나, 거짓 민원을 넣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악성민원’을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비뚤어진 권리 의식에서 싹튼 악성민원으로, 담당 공무원과 감정노동자들은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이에 한국일보와 행정안전부는 공동기획으로 20, 21일 일선 현장에서 민원인을 대하는 상담원들의 고충과 국내외 사례를 통한 해법을 제시했다.

앞서 16일 한국일보 본사 18층 회의실에서 ‘민원문화 개선 방향’을 주제로 논의했다. 한창만 한국일보 지역사회부장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는 이 분야 전문가인 최용범 행정안전부 공공서비스정책관,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 백병성 소비자문제연구소 소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민원 담당자들의 처우 개선과 동시에, 민원인도 자신의 권리 행사 방식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 확산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같이 했다.

한창만=악성민원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민원 담당 공무원이 3만4,000명, 감정노동자가 740만명 정도 되는데 이 사람들의 고통이 크다. 악성민원이 끊이지 않는 원인이 뭐라고 보나.

최용범=공공기관은 악성민원을 크게 허위, 반복, 폭언, 폭행의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악성민원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기관당 연평균 125건의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갑질 문화’가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 본다. 민원인 입장에서는 공무원을 하대해도 된다고 착각하고 큰 소리 내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반면 정부에서는 기관별로 친절도 조사하다 보니 항상 공무원들에게 ‘친절’을 강조한다. 여기에다 지역에 연고도 있고 신분상의 제약도 있다 보니까 단호히 대응을 못하고 그냥 적당히 덮고 넘어가는 측면이 있다.

허경옥=사회적으로 모든 영역에 내 의견을 표현하고 이를 관철시키는 게 일반화해 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분위기도 팽배하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일단 ‘누구는 머리카락 나와서 라면 10박스를 받았는데 나는 1박스만 받았다’ 이런 식의 정보가 많다. 당장 소비자원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전화한다. 금융 관련 민원은 금감원에 한다. 심지어 대학 총장실로 걸려오는 학부모들의 전화도 너무 많다.

백병성=문제는 악성민원이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양쪽 다 피해가 크다. 공무 분야가 특히 그렇다. 경찰대에서 3년 동안 민원만족도 제고 방안을 가지고 연구를 했다. 거기서 경찰 공무원 10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직무 스트레스 1위에 승진 누락이나 범죄 현장 대면, 이런 것들을 제치고 ‘민원인 스트레스’가 올랐다.

한=민원인이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데 공무원도 너무 기계적으로만 대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태도가 악성민원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백=악성 민원을 민원인 개인 성향만 탓할 건 아니다. 설명이 부족하거나 안일하게 대응하고 규정 탓만 하는 등 정부의 민원 처리 방식도 부조리한 측면이 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내가 직접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생각에 포크레인 앞세워 관공서 쳐들어 가는 사건도 일어나는 거 아닌가. 특히 민원인 입장에서는 공감하고 손잡고 울어 주고 이런 것을 기대하고 하소연 하러 왔는데 ‘우리 부서 소관 아니다’라는 식으로 나오면 불만이 커질 수 있다. 소비자원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느낀 건 부처 합동으로 대응하면 발본색원할 수 있는 문제 많은데 그렇게 안 한다. 지난 정부 때 칸막이 행정 안 하겠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허=민원 목적이 ‘문제 해결’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의 소통도 중요한데 이런 노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소비자들도 상대방이 진행 상황, 수용되지 않는 이유 같은 정보 공유만 해줘도 태도가 달라진다. 또 민원 내용을 의사결정권자가 보고 받을 수 있도록 의사소통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기업 같은 경우 민원을 접수하는 콜센터를 보통 외주를 주는데 그렇다 보면 소비자들의 불만이 고위직까지 전달이 안 된다. 선의의 민원이 악성 민원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악성민원과 블랙컨슈머를 줄이기 위한 어떤 해결책이 있다고 보나.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마련도 시급한 것 같다.

허=나도 블랙컨슈머가 될 수 있다. 또는 나도 감정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학교나 지자체 차원에서 소비자 교육을 하거나 악성민원의 폐해를 홍보하는 것도 효과적이란 생각이 든다. 정작 당사자들은 악성민원이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모른다. 악성민원으로 제품 가격 상승, 행정력 낭비 등 각종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백=민원공무원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사기 진작을 위해 가점도 주고, 단발성 힐링프로그램 말고 안식월 같은 파격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인력 충원이 전제되어야 한다. 민원실이 국민과 만나는 접점이 아닌가. 여유가 있어야 민원인과 눈도 마주치고 같이 공감하고 할 수 있다. 악성민원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도 필요하다.

최=현재 민원 공무원에게 인사상의 가점을 주고, 업무 도중 휴식 시간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민원 담당 공무원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부서 이동을 요청하면 보직 제한 기간 내라도 전보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악성민원에 대한 소송이 발생하면 비용 지원, 법률지원단 운영 등 기관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행정기관에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다른 공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민원인의 권리도 있지만 의무도 있다’는 인식 제고에 힘쓰도록 하겠다.

정리=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