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억할 오늘] 제비뽑기(6월 26일)

입력
2017.06.26 04:40
0 0
셜리 잭슨(사진)의 단편소설 '제비뽑기'가 1948년 오늘 발표됐다.
셜리 잭슨(사진)의 단편소설 '제비뽑기'가 1948년 오늘 발표됐다.

미국 작가 셜리 잭슨의 단편소설 ‘제비뽑기’(The Lottery)가 1948년 6월 26일자 ‘뉴요커’ 에 실렸다.

“6월 27일 아침은 날이 맑고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었으며 완연한 여름날답게 싱그러운 온기로 가득했다.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 올랐고(…)”(김시현 옮김, 엘릭시르)로 시작되는 소설은, 마을 전체 주민 300명이 연례행사로 벌여온 제비 뽑기 날의 오전 반나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집마다 가장이 나서 제비를 뽑고, ‘당첨’된 집 식솔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2차 제비 뽑기를 해서 최종 선발된 이를 향해 가족을 포함해 전 주민이 돌을 던져 살해하는 이야기.

버몬트 주의 작은 도시 노스베닝턴의 30대 초반 무명 작가 잭슨은, 어쨌건 그 소설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주로 항의와 분노를 담은 것이긴 했지만, 잡지사와 작가의 집으로 독자 편지가 쇄도했다.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하고 거대한 폭력을 갓 겪은 뒤였다. 하지만 전쟁은, 시민들에게는 뚜렷한 적이 있고 명분이 있는 폭력이었다. 서정적이고 자못 다정하기까지 한 문체로 잭슨이 던져놓은 ‘낯선’ 폭력에, 미국 시민들은 자신들이 믿던 이성과 도덕이 뺨을 맞은 듯 분노했다. 끔찍하고, 당혹스럽고, 역겹고, 혐오스러운 글을 어떻게 저명한 주간지에 실어 주말 분위기를 망쳐 놓느냐는 거였다. 60년 한 강연에서 잭슨은 그 해 여름 받은 약 300여 통의 편지 중 우호적인 건 13통에 불과했고, 그건 대부분 친구들이 보낸 거였다고 말했다. 그 ‘행사’를 직접 참관하고 싶으니 어느 마을이냐고 묻는 편지도 있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나고 자란 그가 노스베닝턴으로 이사한 건 남편이 베닝턴대 교수가 되면서부터였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잭슨에게 그 마을 주민들이 살가웠을 리 없다. 구심력 강한 공동체 사회에 발을 들이게 된 타자의 공포가 그 작품의 바탕이 됐으리라는 얘기. 2차대전 홀로코스트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의 남편이 유대인이었다. 2년 뒤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에 쓴 글에서 잭슨은 “뭔 말을 하려 했는지 설명하긴 무척 힘들다. 다만 고대의 희생제의를 지금 내가 사는 마을로 가져와 초점 없는 폭력과 보편적인 비인간성을 드러내 독자들을 자극하고 싶었다”고 썼다. 아파르트헤이트의 남아공이 그의 책 발매를 금했다는 말에 잭슨이 “그들이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했나 보다”며 뿌듯해 했다는 말도 있다.

‘제비 뽑기’는 이제 열에 아홉이 멋진 작품이라며 엄지를 세우는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그들 아홉 중 다른 손에 돌멩이를 든 이가 또 열에 아홉쯤 될지 모른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