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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폭민과 시민

입력
2017.02.2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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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외신들은 1951년 발간된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찾는 미국인들의 발길이 급증해 아마존 등에서 한때 품절 소동이 있었다고 전했다. 20세기 초 지구촌에 불어닥친 나치즘과 스탈리니즘의 근원과 광기를 분석한 이 책은 아렌트를 세계적 정치사상가 반열에 올려놓은 명저. 6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 새삼 일반인의 화제가 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슬람 행태가 전체주의를 낳은 반유대주의와 유사해서다. '이슬람포비아(Islamophobia)' 등 인종주의와 혐오를 부추기는 트럼프의 뇌 구조와 심리를 알고 싶었던 게다.

▦ 전체주의는 선동과 적대를 앞세운 대중운동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폭력적 정치체제를 일컫는다. 아렌트의 책은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20세기에, 가장 이성적이야할 국가가 어떻게 집단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폭민(暴民ㆍmobs)'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찬, 조직되지 않은 개인이 특정 도그마를 만나면 폭민이 되는데, 이들을 교묘히 조직화한 체제가 전체주의라는 것이다. 나치즘에서 이 도그마가 '게르만 혈통의 영광'이었다면 트럼피즘에선 '미국 우선주의'쯤 되겠다.

▦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의 팬덤 현상을 분석한 최근 본보 기사 '문빠, 힘인가 독인가'(2월18일자)'에서 박구용 전남대 교수는 정치인 팬덤을 '가치관을 공유하는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긍정평가하면서도 "잘못을 감싸면서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마음은 아렌트 제시한 '폭민'처럼 극단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계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으로 이뤄진 세상'에 대한 절대적 기대와 묻지마 지지는 폐쇄와 배타를 양손에 쥔 폭민을 양산할 것이라는 경고다.

▦ 그런데 정작 폭민에 대한 우려는 도심 광장, 그 중에서도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서 비롯된다. 탄핵기각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지도자들과 보수정치인들이 '좌파 및 언론 책동'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아스팔트 피''어마어마한 참극''악마의 재판관''망나니 특검'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주권자를 위협하고 군중의 폭력화를 선동하는 까닭이다. 박근혜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서도 험한 말이 나오지만 이에 비길 바 아니다. 오늘 3ㆍ1절 98돌을 맞아 양측이 결정적인 세싸움을 벌인다고 한다. 폭민과 시민의 갈림길이다. 이유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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