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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청년은 어떻게 기피의 대상이 되었나

입력
2017.10.13 14: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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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이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눈을 마주치자 다가와 대뜸 “여기 주민들이 반대했어요. 임대주택 짓는 거”라고 했다. 입주자는 “임대주택이 아니라, 협동조합형 주택인데요”라고 말했지만, 그 사람에게 이곳은 그저 가난하고 불쌍한 청년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임대주택’에 불과했다.

이 이야기는 청년협동조합형 주택에 거주하는 지인의 이야기이다. 청년협동조합형 주택은 한 건물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운영하는 사회주택 모델 중 하나이다. 이곳 주민들이 ‘청년’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여느 20~30대처럼 직장인, 프리랜서 등 다양한 직업군이 모여 산다. 그런데 공공의 지원을 받고, 청년들이 모여 산다는 이유로, “입주를 반대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도시 청년들은 잦은 이주를 경험한다. 집 계약이 끝날 때마다 혹은 학교나 직장에 따라 거주지가 달라진다. 유목민적 삶에 지친 청년들이 모여 몇 년 사이 지역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마을 재생뿐만 아니라, 예술, 창업, 커뮤니티 활동 등을 통해 지역활동에 적극적이다. 서울의 모 지역구에서는 여러 청년단체가 모여 청년특구 사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논의 과정이 엉뚱하게 세대 문제로 와전되었다. 지역특구사업에 선정되면, 그에 따른 예산이 추가로 편성되고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도 ‘청년’은 ‘우리’의 예산을 빼앗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두 이야기처럼, 지역에서 청년은 기피의 대상이자 불편한 존재이다. 서울시에서 내놓은 역세권 2030 청년주택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 청년 임대주택이 늘어나면 집값이 내려간다는 사람들, 청년들이 많이 모이면 유흥가가 늘어나고 동네가 시끄러워진다는 사람들. 이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청년’이 아닌 다른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하더라도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니 청년 자체가 싫다기보다 임대주택 즉 공공주거시설로 인해 집값이 하락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

유사한 현상으로 최근 어린이집과 임대주택 같은 보건ㆍ복지 시설의 반대가 지역 내 갈등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내가 사는 서울 변두리에도 몇 주 전부터 국유지에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인근 아파트 외벽에 가득 걸려있다. 개인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지만, 마을을 사유화할 수는 없다. 마을은 단순히 지리적 조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마을까지 구매했다고 믿고 권리를 행사하려 든다.

청년은 이미 지역에서 세입자로 사는 사람들이다. 단지 지역 구성원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청년이든 노인이든 구조적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에서 공공복지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전부터 살아왔던 사람들이 임대주택으로 이사한다고 해서 지역주민에게 해가 될 건 없다. 오히려 지역에 공공시설이 늘어나고, 아이와 청년과 노인이 늘어나서 보건ㆍ복지 시설이 확충되면 전세대가 찾고 싶은 지역이 된다. 사람이 모이면, 다양한 문화시설과 공원이 만들어지고 대형마트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사회적 자원을 얻는다.

오래 전 수업시간에 노인마을을 상상해보라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동권과 의료ㆍ편의시설에만 집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형 노인요양시설을 상상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노인마을을 그린다면 전혀 다른 지도를 그릴 것이다. 공터에 노인마을을 상상하며 그린 마을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에서 시작하는 마을이 나올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이나 사회적 취약계층을 배제하면서 만드는 나의 안락함이 아니라, 이미 함께 살고 있음의 감각과 그로 인한 풍요로움이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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