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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ㆍ자백 등 감형요소 적용 남발… 범죄자들 악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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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ㆍ자백 등 감형요소 적용 남발… 범죄자들 악용도

입력
2018.02.13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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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ㆍ상해치사 비상식적 형량 왜

형법에 3~30년 중형 규정에도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본형은 2~4년, 3~5년

법원, 형량 가중요소 소홀 경향도

사람을 때려서 죽였는데 어떻게 집행유예 같은 지극히 낮은 형량이 가능할까. 우리 형법에서 폭행치사, 상해치사는 각각 징역 3~30년으로 정한다. 결코 낮은 형량이 아니다. 폭행치사는 폭력을 쓰려고, 상해치사는 해까지 가하려고 의도했다가 사망을 불러온 범죄다.

하지만 일선 판사들에게 형량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이하 양형위)는 폭행치사 기본형을 2~4년, 상해치사 3~5년을 제시하고 있다. 폭행치사는 법정 최저형보다 낮은 형을, 상해치사는 최저형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감경ㆍ가중 요소들을 감안해 형량을 줄이거나 늘릴 수 있다. 감경요소에는 진지한 반성, 처벌불원(합의)이 들어간다. 양형위는 피해자나 유족과의 합의를 특별양형인자로 취급해, 일반 감형요소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 형법에 따라 작량감경(정상참작에 따른 법관 재량 감경)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상식으로 보면 의아한 정도의 형량 선고가 가능해진다.

기본적으로 대법원의 양형 권고기준이 낮은 데다, 판사들이 온갖 감경요소를 남발하면서 죄질이 나쁜 범죄에도 단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배수진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성희롱 구제센터 센터장)는 의정부지법 사건(상해치사 집행유예)과 대전고법 사건(폭행치사ㆍ암매장 징역 3년)의 판결문을 분석한 후 “두 사건이 비슷한데 판사가 ‘우발적’으로 봤다는 게 굉장히 놀랍다”고 말했다. 저항하지도 않는 피해자의 얼굴을 각각 10회, 4회 때려 사망케 한 것을 ‘우발적으로’라고 모두 표현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배 변호사는 “얼굴처럼 피해가 클 수 있는 부위 폭행은 계획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계획범죄는 가중요소다”고 지적했다. 또 “동기가 질투 때문에 때렸다는 것인데 ‘비난할만한 동기’는 가중요소이며, 이 부분이 빠졌다”고 했다.

배 변호사는 “집유까지 왜 나왔을까 살펴보니, 자신이 신고하고 자백을 한 점, 초범이었고, 합의했다는 사실을 재판부가 너무 과대하게 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대전고법 사건은, 암매장 뒤 4년간 밝히지 않고 경찰이 사체를 찾은 후에야 범행을 인정했는데도 ‘사건 범행을 모두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는 점’이 감경요인이 됐다. 배 변호사는 “심지어 이 사람(범인)은 폭력 전과가 있다”며 “가중요소인데 이 부분도 판결문에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상해ㆍ폭행치사 사건은 술자리 시비 등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성 사망자가 여성보다 두 배 정도 많다. 그러나 잔혹 범죄 피해자는 주로 여성이라는 점에서, 합의 문제는 줄곧 여성단체들이 제기해왔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2007년 양형위 설립 당시, 여성단체들은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합의로 감경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며 “하지만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에 들어서면서 양형위에서 여성단체들을 부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합의, 자백이 이뤄지면 이중 감경이 된다”며 “성범죄자들 사이에서는 자백하고 합의하면 풀려난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처럼 퍼져있다”고 토로했다. 재판부에 반성을 어필하기 위해 여성단체에 후원을 문의하는 성폭력 범죄자들이 꾸준히 있으며, 후원영수증을 제출했는데 감형이 안 되자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다. 미국 등은 플리바기닝(유죄협상제도)이 있어 수사단계에서 협상이 있지만,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량은 높다.

양형위 위원은 법관,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들이 주축이며 외부 인사는 극소수다. 외부 인사로 ‘MBC 적폐’로 꼽혔던 김장겸 전 MBC 사장이 2015년 활동했을 정도로 균형감을 잃었다는 평가다. 대법원 양형위 관계자는 “성폭력, 뇌물죄 같은 경우 그동안 양형위가 형을 많이 높여왔으나 폭행치사 등은 다른 측면이 있다”며 “합의 문제에 있어서도 재판부가 자체 판단에 따라 합의를 형량에 감안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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