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진은영의 아침을 여는 시] 나무에 기대어

입력
2016.01.03 08:44
0 0

세상의 모든 시인들은 저마다 나무-론(論)을 가지고 있다고 할 만큼 나무에 대해 시를 많이 쓰고 또 나무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이 시인에게 나무는 몸을 기대고 숨길 수 있는 곳이군요. 세상을 헤매느라 지친 한 사람이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나무에 등을 기대어 봅니다. 나무는 푸르고 긴 가지들을 늘어뜨려 그의 쓸쓸하고 피로한 얼굴을 가려주겠지요.

나뭇잎들로 얼굴을 가리고 싶은 이가 한 사람뿐만은 아닌가 봅니다. 루마니아 시인 마린 소레스쿠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쓰려고 할 것이다./ 그의 단단한 마스크를/ 나 자신도 푸른 나무처럼 변하여/ 단순히 나타나고 싶다.”

그런데 나무에 기댄 저 사람은 무엇이 슬픈 걸까요? 나뭇잎들 하나하나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많은 이들 사이를 지나왔으나 결국 혼자인 지금 이 순간일까요? 누군가 그에게 기댈 수 있었다면 그도 기댈 이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요. 이 사람은 자신이 누구에게도 나무가 되어주지 못했을까봐 자책하면서 나무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로버트 블라이의 담담한 위로를 전합니다. “우리는 결국 전체로 남아 있지 못했다./ 우리는 나무들처럼 잎들을 잃어버렸다./ 부러진 나무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거대한 뿌리에서 올라오며.”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