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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청와대 메뉴의 정치학

입력
2016.08.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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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정권을 종식시키고 탄생한 김영삼 문민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서민적 청와대 이미지 구축이었다. 칼국수가 청와대 대표 메뉴로 자리잡은 건 그 일환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YS와 영수회담을 할 때 칼국수만으로 양이 차지 않아 다시 식사를 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초청 인사들의 불평이 쏟아졌지만 YS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순한 음식을 넘어 절약과 청렴, 개혁 의지를 드러내는 상징물로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 청와대 메뉴에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에서 차별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 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들 앞에는 찻잔과 물컵이 덩그러니 놓였다. 회동이 끝난 시간은 오전 11시50분. 점심시간이 됐는데도 “이왕 오셨으니 식사나 하고 가시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당사로 향하던 김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평소 가고 싶었던 고깃집이 있는데 거기서 점심 먹고 갑시다.”

▦ 박 대통령이 오랜만에 많이 웃었다는 지난 11일 이정현 대표 초청 오찬에서의 호화메뉴가 구설에 올랐다. 송로버섯, 샥스핀, 캐비아 샐러드, 바닷가재 등 최고급 메뉴의 코스 요리가 나왔다. 마음에 드는 사람 음식 챙겨주는 거야 뭐랄 바 아니지만 서민들은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요리를 내놨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래 놓고 8ㆍ15 경축사에서 국민에게는 “어려운 시기에 콩 한 쪽도 서로 나눠 먹으라”고 했으니 그 무신경이라니. 송로버섯이야 청와대 말대로 “음식 맛을 돋우기 위해 조금 썼다”고 하더라도 멸종 위기에 놓인 상어 보호 차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퇴출하고 있는 샥스핀을 내놓은 건 상식 이하다.

▦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 전원을 초청한 만찬에도 샥스핀이 나왔다. 그러자 새누리당에서 “청년 실업자와 결식 아동의 굶주림은 안중에도 없고 요란한 잔칫상을 벌였다”고 거세게 공격했다. 박 대통령은 담백한 음식을 즐기는 데다 소식을 한다. 당선인 시절 “우리 향토 음식과 나물, 특히 두릅나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호화 오찬이 대통령 입맛에 맞춘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더 여당의 친박 지도부를 환대한 의도가 걱정스럽다.

이충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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