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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 지원 정부 개입 법적으로 막아야”

입력
2017.03.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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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예술행동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7일 서울 국가정보원 앞에서 검은 비닐을 뒤집어 쓰고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국가정보원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퇴진 예술행동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7일 서울 국가정보원 앞에서 검은 비닐을 뒤집어 쓰고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국가정보원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원 배제는 인사, 예산, 법을 무기로 문화예술인을 통제하려 했다는 점에서 문화에 대한 인식이 아버지 박정희 시대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문제의 법적 제도적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에 참석한 장지연 문화문제대응모임 공동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작성을 “유신 시절과 같은 공권력 동원이 아닌, 예술인 개인을 지원사업에서 배제”해 문화예술인들을 길들이려 한 정책으로 정의했다. “예술인들에게 좌절감과 동시에 심한 모멸감을 안겨주었다”는 평가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국정 3대 기조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내세웠지만 문화 정책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문화계와의 소통 대신 편가르기를 추구하며 정부와 다른 생각을 지닌 인사들에 등을 돌렸다. 문화 각계 명사들로 구성된 문화융성위원회를 출범시켰으나 정부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평가다. 문화 정책에서도 불통으로 일관했던 셈이다. 비우호적인 인사에 대한 정부의 폐쇄적 인식과 내 편만 챙겨주기 식 ‘분열 정치’는 블랙리스트로 구체화됐다.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문화융성을 외쳤던 정부가 창조와 문화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뒤흔든 것이다.

배제와 편가르기의 정점, 블랙리스트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과 기관에 대한 배제와 ‘탄압’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2013년 9월3~15일 국립극단이 공연한 연극 ‘개구리’와 같은 시기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블랙리스트 적용의 신호탄이었다. ‘개구리’는 박정희ㆍ박근혜 부녀를 풍자했고, ‘천안함 프로젝트’는 2010년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이라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3년 9월9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두 작품에 대해 “용서가 안 된다”고 말했다고 박영수 특별검사팀(특검)은 파악했다.

문체부 산하단체 독립 기금 지원사업, 특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지원사업이 주요 타깃이 됐다. 문체부는 2014년도 예술위의 분야별 책임심의위원 후보 105명 명단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청와대는 이중 문학평론가 황현산, 방민호 등 19명을 심의위원에서 빼라고 지시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 촛불시위 참여 전력을 문제 삼았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을 비롯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 18명이 역시 비슷한 이유로 예술위의 2015년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사업에서 떨어졌다. 특검은 2014년 10월~2016년 9월 예술위 주관 사업 가운데 26개 사업에서 307개 개인ㆍ단체를 포함한 지원ㆍ선정 배제 명단을 청와대가 하달했다고 파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은 광주 비엔날레 전시가 불허됐고, 2014년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는 폐막 직후 감사원 특별감사를 받아 이용관 집행위원장 등 3명이 협찬 중개수수료 허위 집행 명목으로 부산광역시에 의해 고발됐다.

책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문체부 산하 법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의 ‘세종도서’ 2014년 지원 사업에 2차 심사를 통과한 763종 중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9종이 청와대의 ‘문제 도서’에 분류돼 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못 했다.

“예술기금 지원 정부 개입 법적으로 막아야”

블랙리스트가 문화계를 넘어 사회 전체를 뒤흔든 만큼 여진은 크다. 문화계 인사나 문화단체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지원 배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제도적 안전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블랙리스트의 중심에 놓인 문체부는 9일 문화예술 검열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부당하게 폐지, 축소된 사업 복구 및 ‘예술가의 권익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한편 예술위 등 문체부 산하 예술지원기관의 기관장을 기관의 이사 또는 위원들 호선제로 뽑겠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문체부의 ‘윤허’가 있어야만 가능 했던 기관장 임명을 기관 자율에 맡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예술지원기관의 회의록 작성·관리·공개 규정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원심의 결과에 불복할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지원심의 옴부즈맨’ 제도도 도입하기도 했다. 문화 현장의 요구를 거의 대부분 반영하고, 문화 전문가들의 조언 대부분이 담긴 발표 내용이었다.

문체부의 재발 방지 대책 만으로 단절과 편가르기의 낡은 리더십은 해소 가능할까. 문화계 인사 대부분은 고개를 젓는다. 블랙리스트 사태 해결의 핵심인 책임자 처벌이 빠졌다는 이유에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종덕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이 구속 기소된 것으로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 현장에서 관련자들의 법적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6일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한 ‘2017 연극발전을 위한 시국토론회’에서 채승훈 연극 연출가는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행위는 예술가 숨통을 조이는 행위다”며 “(관련자들은) 즉시 사퇴하고 예술인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8일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강신하 블랙리스트 소송대리단 단장은 국가권력이 문화예술 지원 심사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개별 기금지원 관련 법률에 국가권력 개입 금지 규정 신설 ▦문화예술계 불공정 행위 규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선언적인 방지 대책 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체적인 규정 신설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제도의 빈틈은 문화예술계, 책임 있는 관료사회가 채울 수밖에 없다”며 “(문화예술인 지원)차별금지 사유의 구체적 내용을 국가공무원법, 공무원 행동강령, 국가공무원 복무 규정 등에 명시하고 부당 직무 지시를 받았을 때의 대처에 대해서도 상세한 규정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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