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불리는 일본 도쿄(東京) 쓰키지(築地)시장의 새벽이 활어처럼 펄떡거린다. 울긋불긋한 간판과 조명 사이로 팔딱팔딱 뛰는 생선들, 비릿한 내음에 왁자지껄한 말소리. 숨돌릴 틈 없는 부산한 풍경이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 그대로다. 매일 새벽 60여개국에서 온갖 어종이 들어와 하루 물동량만 1,779톤에 달한다. 하루 매출 15억5,000만엔(약 167억3,000만원), 하루 입장객 4만명. 활력과 힘, 생명력으로 온통 가득 차있다.
8일 새벽 찾아간 쓰키지시장은 일본 최대규모의 수산 도매시장답게 품질 좋은 생선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눈치작전이 한창 펼쳐지고 있었다. 오전 5시께 경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상인들과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회색빛 참치 앞에서 갈색 모자를 쓴 경매사들은 쉴새 없이 주먹만 한 크기의 종을 흔드는가 하면, 상인들은 호가에 맞춰 손을 치켜들었다. 싱싱한 몸을 드러낸 생선들은 옆에서 지켜만 봐도 오감을 자극했다. 눈이 충혈될 정도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경매사의 눈빛은 인상적이다. 장화를 신고 갈고리를 든 한 경매사에게 무슨 작업을 하는지 묻자 “참치의 꼬리부분을 찔러 육질을 살펴본다”고 했다. 10~15분 간격으로 참치경매가 이어졌다. 오전 6시 30분이 돼서야 바닥에 깔린 150~200여 마리의 참치들이 다 팔려나갔다.
수산대국 일본의 상징, 참치걱정에 시름
쓰키지 새벽경매시장은 유명한 관광코스이기도 하다. 무심한 표정으로 생선배달박스를 옮기는 사람, 활어의 숨통을 끊는 거대한 생선칼을 지켜만 봐도 흥미진진하다. 공기가 찬 새벽 3시 30분쯤 되자 견학순번을 받기 위한 행렬이 늘어섰다. 대부분 해외 관광객이다. 매일 120명에게만 견학 기회가 주어지는데 4시 30분쯤 도착한 한 관광객은 “호텔에서 잠을 안자고 바로 왔다”라며 하소연했지만 끝내 문전박대를 면치 못했다. 인원제한을 넘기면 시장 상인들의 생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물건을 나를 때 작은 삼륜트럭(타레)을 급히 몰아야 하는 상인들은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항상 반갑지만은 않다.
수많은 생선 중 이곳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참치를 놓고 요즘 일본에선 말들이 많다.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인 참치에 대해 국제사회는 물론 일본정부도 남획을 규제하면서 수산업계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당장 일본 정부는 7월부터 참치의 연간 어획상한선을 정해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수자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태평양 참다랑어가 우선 도마에 오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현재 어업인들의 자율적 규제에 맡겨진 어획량 조절이 수산 당국에 의해 이뤄지며 만일 상한선을 넘겨 어획할 경우 벌금 등 벌칙이 부여된다.
일본 정부의 1차적인 규제대상은 성어가 되기 전의 중량 30㎏미만의 참치 치어다. 이후일본 수산청은 전국의 해역을 6개 블록으로 구분해 현재의 어획량을 토대로 조업 상한선을 확정하고 어업인 이익단체 등과 협의해 최종 규제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참치가 타깃이 된 이유는 분명하다. 참치는 일본인들이 즐겨먹는 고급 스시(초밥)의 재료로서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다. 당연히 오랜 세월 남획되면서 어획량이 줄어들어 왔다. 이에 2014년 국제사회는 지난 2002~2004년 30㎏미만 소형 다랑어 평균 조업량의 절반까지 참치 어획량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국제자연보호연합(IUCN)이 참치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면서 국제규제가 부쩍 강화되고 있다.
국제사회 규제 뿐 아니라 일본의 자체적인 어자원 보호를 위한 규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1997년 200해리 내 어획량을 규제하는 어획가능량(TAC)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해양생물자원보존관리법에 근거를 둔 조치로 고등어나 꽁치, 명태, 전갱이 등 일곱 가지 물고기 어종에 적용되고 있다. 이 내용을 이젠 일본 식탁의 최고 반찬인 참치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고급 스시재료, 참다랑어 어획 규제 개시
어획량 쿼터제 도입이 국제적인 참치 남획 규제를 준수하는 차원이지만 일본 수산업계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 파장이 쓰키지시장에서도 역력했다. 규제강화가 이뤄지면 어획량이 줄어 참치가 들어간 스시 가격이 급등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기무라 코세이(木村耕精ㆍ48) 경매사는 “이제 참치가격이 내려갈 일은 없어졌다. 최소한 10~20%정도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반년쯤 뒤 상황이 돌변할 수 있다”며 “스시가격이 비싸져 이곳에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만큼 이른 봄부터 참치잡이를 서두르게 돼 통상 참치 가격이 가장 비싼 초가을엔 실제 소매가격이 큰 폭으로 인상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 참치도매업자는 “긴 안목으로 보면 일본에서 필수적인 참치 수요 확보가 곤란해지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매사는 “참치는 여러 품종이 있어 용도에 따라 시장상황이 가변적이지만 7월부터 돌발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참다랑어는 지금도 귀해 인도산 참치를 많이 쓴다”고 전했다.
일본 국제수산자원연구소의 시마다 히로유키(56) 참다랑어 연구부장은 “한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참다랑어가 아닌 대서양 쪽에서 주로 잡히는 다른 참치어종의 경우는 자원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며 “양식환경을 개선하고 어획량을 유지한다면 큰 어려움이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참치어획량 규제가 실제 자원보호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쓰키지시장 업자들에 따르면 홋카이도(北海道)와 아오모리(靑森)현 쪽에선 30㎏미만의 작은 물고기는 보통 그물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어종보호를 위해선 보다 큰 성어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소마수산의 사장인 소마(43)씨는 “최근엔 자연산보다 양식을 통해 참치를 확보하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며 “되도록 어린 참치를 잡지 말고 수산물 보호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획량이 줄고 이에 따라 규제가 강화되면 값이 치솟아 더 이상 서민들은 참치를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 평균 소매 참치가격이 전년보다 20%나 상승했다며 곧 쉽게 구하기 힘든 ‘재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겨울 이사 가는 쓰키지시장, 관광객도 따라올까
1935년 개설된 쓰키지시장의 면적은 약 23만1,400㎡로 노량진 수산시장의 3배가 넘는다. 8개 도매업체와 1,000여개의 중도매업자가 활동하는 이곳에선 주로 수산물이 거래되지만 이른바 장외시장이라 불리는 곳에선 청과나 가공품도 팔리고 있다. 팽팽한 긴장속에 낙찰된 참치가 운반돼 해체되는 작업은 쓰키지의 독특한 볼거리다. 신장의 절반만한 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관광객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이 쓰키지의 수산물 시장은 그러나 올해 11월 도쿄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다. 노후화된 시설 때문이다. 그에 따른 상인들의 아쉬움이 크다 보니 여러 품목을 취급하는 장외시장 상점들을 중심으로 이전 반대운동이 진행되기도 했다.
싱싱한 해산물을 내놓는 밥집, 식료품 가게, 장화가게, 저울가게, 그릇가게 등 각종 상점이 뒤섞인 이곳에 대한 상인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지 2개월 된 사와다 메구미씨는 “항상 시끄럽고 활기찬 분위기가 좋아서 왔는데 수산물 시장이 이전한 후에도 관광객들이 지금처럼 많이 찾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장외시장 역시 참치의 메카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참치뱃살을 비롯해 등살, 볼살 등을 구분해 맛볼 수 있다. 이곳의 ‘스시잔마이’란 체인업체는 올해 첫 경매에서 200㎏짜리 대형참치를 무려 1,400만엔(약 1억5,000만원)에 낙찰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경력 25년의 ‘스시장인’ 이케가미(43)씨는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려 올해 특히 참치가 부족하다”며 “지금보다 더 공급이 줄어들면 우리처럼 대량구매해 싼 가격에 고급스시를 공급하는 곳은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외시장은 옮기지 않지만 쓰키지의 수산시장이 이사 가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의 쓰키지시장은 긴자(銀座)를 코앞에 둔 도쿄 노른자위 땅에 있다. 오는 11월 지금 위치에서 2㎞가량 떨어진 도요스(豊洲)로 이전한다. 쓰키지시장의 재탄생이 성공할지 일본 관광당국의 부담감도 커지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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