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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두 사람을 위한 중국식 만찬

입력
2015.11.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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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이 국민당 정적인 장제스를 만난 이후 70년 간 대만해협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그들의 후계자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회담한 건 그래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회담에 앞서 진행된 외교 협상은 저녁식사 비용 문제까지 다뤘을 만큼 매우 복잡했다(그들은 나눠서 지불했다). 그러나 비공개로 간략하게 의견을 교환한 후 공동성명은 발표하지 않았고 중국 국영방송은 회담이 굉장히 깔끔하게 진행됐다는 설명만 전했다.

이번 회담은 왜 열렸고 그것이 예고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국공내전(공산당과 국민당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1945년 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에서 승리하고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가 대만으로 철수한 뒤 양측 사이의 관계는 제대로 불붙지도 않은 채 검게 그을리기만 했다. 미국과 국민당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대만에 군사적 보호를 보장했고 그 때문에 중국은 무력으로 섬을 본토에 통합시키지 못했다.

북한을 지지하느라 남한과 서방 동맹국들에 맞섰던 마오쩌둥의 한반도 모험으로 워싱턴-타이베이 연합은 더 단단해졌다. 이 연합은 훌륭한 외교적 대응 덕에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관계를 회복한 뒤에도 이어졌다. 미국은 베이징의 공산당을 중국의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한편 대만을 독립국가와 국가 준비 단계의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도록 했다. 대만은 자신들의 국정을 운영했고 1980년대 들어 떠들썩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하지만 완전한 독립국으로 국제적으로 인정 받겠다고 고집한 적은 없다.

중국의 지배자들은 대만을 ‘변절한 자국 영토’로 여겼고, 대만을 그 이상으로 대하는 나라를 견제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해)현실을 인정하는 태도도 보였다.

사람들은 1989년 하면 톈안먼 광장의 학살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해 5, 6월 나 같은 관료들은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이고 또 진정 역사적으로 중요한 행사처럼 보이는 일로 베이징에 갔다. 중국이 ‘중국 대만’으로 부른다는 조건을 달아 아시아개발은행의 연례이사회에 대만의 참가를 처음으로 허용한 것이다.

몇 년 뒤 내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이었을 때 일이다. 중국과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여부를 협의하고 나서 우리는 WTO 규정 준수를 살피기 위해 타이베이에 EU 사무국을 설치하도록 했다. 그 전에 나는 중국 정부에게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분명히 말했다. 대사관이 아니라 상업적인 감독기관을 여는 것이라고 말이다.

중국과 대만 모두에게 돈은 아주 중요하다. 많은 대만인들이 중국(특히 상하이)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고 중국 제조업에는 막대한 대만 자본이 투입돼 있을 만큼 양측 경제는 매우 밀접한 관계다. (블랙베리, 아이폰 그리고 킨들을 포함해)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대만의 폭스콘은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선전 공장을 비롯해 12개의 공장을 중국에 두고 있다.

대만 정치는 원래 본토와의 관계에 크게 영향을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른 중국과 대만의 교역 관계는 외교 상황에 직접 좌우되지 않는다. 국민당(중국 국민당으로 불리기도 한다)은 대만의 독립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길 원한다. 국민당의 반대편에 있는 민주진보당은, 중국의 코를 잡아 비트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걸 하려 드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더 자주적인 형태를 원하고 있다.

3년 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500만 대만인들의 80%는 중국의 침략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공식적인 독립선언을 지지했다. 이건 꽤 상당한 경고다. 중국은 꾸준히 대만에 대해 그 어떤 부주의한 행동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미국은 대만 지도자들이 본토를 향해 너무 멋대로 행동할 때마다 그들을 압박한다.

시진핑과 마잉주가 만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첫째, 그들은 분명히 지난해 압도적인 표차로 지방선거에서 패했던 국민당이 1월 총선거에서 질 것을 염려하고 있다. 양측은 중국과 대만이 별일 없이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선거에서 국민당에 도움 주기를 바란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 내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자국의 무력 과시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긴장이 높아지는 시기에 중국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은 것 같다. 미국뿐 아니라 주위 국가들을 불안하게 하면서 시진핑은 베트남을, 리커창 총리는 한국을 방문했다. 시진핑과 마잉주가 저녁식사를 함께 한 것도 비슷한 종류의 외교다.

중국이 장기적으로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다. 아마도 그렇게 보이는 것 자체가 전략의 일부일 것이다. 외교에서는 모호한 메시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는 명백하다.

첫째, 시진핑의 지도력은 그가 어느 정도까지 중국 정치를 지배하려는 생각인지 보여준다. 지도력이 부족한 지도자였다면 과거 공산당의 정통 노선과 완전히 단절하는 그런 야심 찬 결정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중국이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가 전제되지 않는 중국과 대만의 평화로운 재통합은 불가능할 것 같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 중국은 홍콩에 똑같은 약속을 했다. 대만인들이 현재 홍콩의 상황을 보며 안심할 리가 없다.

대만의 제도는 민주적이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홍콩의 사례가 시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중국이 대만을 자국의 일부로 다시 받아들이려면 대만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거나 중국이 두 가지 모두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스 패튼 영국 옥스퍼드대 총장ㆍ전 홍콩 총독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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