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병원 지정된 공공 의료기관들, 입원했던 의료 취약계층 내보내
메르스 유족들은 밀접접촉자로 격리… 고인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발 동동
집안의 가장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유족들이 격리돼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한 정부의 ‘병상 돌려막기’로 공공 의료기관에 입원해 있던 취약계층 중증 질환자들이 의료사각지대로 내몰릴 처지에 놓이는 등 메르스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14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10일 메르스에 걸려 사망한 60대 남성 A(62)씨의 유족들은 한 집안의 가장을 허망하게 떠나 보냈음에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모와 아내, 두 아들 등 밀접접촉자인 온 가족이 집 안에 격리돼 있기 때문이다. 화장한 A씨의 유골은 현재 근처 납골시설에 맡겨져 있다. 그의 장례는 가족들의 격리가 모두 해제되는 21일 이후에나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특히 ‘몹쓸 병을 퍼뜨렸다’는 따가운 눈총 속에 농작물조차 수확하지 못하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문밖 출입을 못하다 보니 유일한 생계수단인 애호박 넝쿨은 열흘 넘게 보살핌을 받지 못해 썩어가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해 애호박 농사를 지어 1,000여 만원의 수익을 냈지만, 집밖을 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고스란히 손해를 입을 처지”라며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행히 이런 사연이 알려지자 충북도가 보상방침을 밝혔지만, 예상치 못한 가장의 죽음이 많은 것을 앗아간 뒤였다.
메르스에 감염돼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지난 4일 숨진 80대 남성의 유족들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하던 어머니와 아들 등이 병원과 자택에 격리돼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아들이 “방호복을 입고서라도 아버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허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메르스가 가족들을 ‘생이별’시켜 놓은 셈이다.
메르스 확산으로 취약계층을 의료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등 전국 공공 의료기관이 메르스 전용병원으로 운영되면서 기존에 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병실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에 따르면 국립중앙의료원은 메르스 코호트격리병원으로 지정된 5일부터 9일까지 기존 입원환자를 모두 내보냈다. 특히 13명의 에이즈 입원환자 가운데 10명은 의료원이 연계한 전국 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3명은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입원 의료기관을 끝까지 정하지 못해 자택 등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3개의 음압병상이 있는 강원 원주의료원의 경우 앞으로 메르스 환자가 추가로 발생하면 결핵환자와 중환자실 환자를 모두 내보내야 한다. 특히 HIV감염이나 중증 결핵환자 등은 공공 의료기관 중심으로 치료와 격리가 이뤄지고 있어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되면 취약계층이 의료혜택을 받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실장은 “정부가 공공의료 기능을 축소해 그 피해를 취약계층이 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박은성기자 esp7@hankookilbo.comㆍ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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