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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7.03.13 17:01
수정 : 2017.03.13 17:01

[김월회 칼럼] 말의 ‘형성적’ 힘

등록 : 2017.03.13 17:01
수정 : 2017.03.13 17:01

만리장성을 지은 진시황은 황하와 장강 일대를 동시에 장악, 중국 최초로 통일 대제국을 이룬 군주였다.

그는 이를 온전히 기리기 위해 자신을 ‘시황’, 그러니까 ‘첫(始) 황제(皇)’라고 칭하라 했다. ‘진 제국 최초의 황제’라는 뜻의 진시황이란 표현은 그렇게 생성됐다.

진시황 이전, 황(皇)과 제(帝)는 모두 사람이 아니라 신에게 붙이는 호칭이었다. 사람 가운데 가장 높은 이인 군주는 왕이라 불렸다. 진시황은, 자신이 건설한 나라가 새로운 차원의 나라임을 표방하고자 신에게 쓰는 호칭으로 자기를 칭하게 했던 것이다. 신생 국가가 이전 나라와는 ‘급’이 다른, 곧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임을 온 천하에 알리자는 취지였다.

그러고는 제국이 자손만대까지 존속돼야 한다는 염원을 담아 자신을 ‘첫 황제’로 부르게 했다. 또 아들은 ‘두 번째 황제(二世)’로, 손자는 ‘세 번째 황제(三世)’로 칭하게 했다. 환공, 진공 같이 시호를 사용하던 전통을 깨고 새로운 표현을 개발한 후 거기에 제위가 만세(萬世) 후까지 전해져야 한다는 욕망을 담아냈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전에 없었던 새로운 급의 군주임을 만백성에게 각인하고자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을 통제하기도 했다. 황제가 스스로를 칭하는 짐(朕)과 황제의 거처를 뜻하는 궁(宮)이 대표적 예다. 진시황이 그렇게 독점하기 전, 짐과 궁은 자신과 자기 거처를 가리킬 때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었다. 이들이 황제 전용으로 제한됨으로써 사람들이 ‘나’나 우리 ‘집’을 가리키며 짐이나 궁을 쓰게 되면 본의 아니게 반역에 준하는 불경죄를 범한 셈이 되고 만다. 그러니 알아서 자기 검열을 하게 되고, 황제의 신성한 힘과 권위는 그렇게 말을 매개로 일상을 지배하면서 사람들에게 내면화된다.

이는, 진시황이 말을 이용하여 제국과 황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현실에 착근해 갔음을 일러준다. 신문, 잡지나 방송, 의무교육기관 같이 국가이념을 방방곡곡에 효율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음에도, 말의 힘에 의지하여 제국이란 체제를 광범위한 지역에서 유의미한 수준 이상으로 구동되게끔 했다는 뜻이다.

2,000년도 더 된 중국 얘기를 하는 까닭은, 말의 힘은 그때나 지금이나 또 거기서나 여기서나 동일함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그 힘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성경’)와 같은, 어떤 주술적이고 신령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과 국가사회가 형성되는 데에 실제적으로 개입된 사회적 힘이다. 이를테면 영어나 독어 등의 ‘국어’가, 곧 근대화된 말이 국민(nation)을 만들어내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주인인 국민국가가 주조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말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늘 뭔가를 빚어내는 ‘형성적 힘’을 행사해왔다는 것이다.

말의 형성적 힘은 대통령 탄핵이란 헌정사 최초의 사건에서도 유감없이 목도된다. 전처럼 돌이나 화염병 등을 들지 않았어도 위대한 진보를 일궈낼 수 있었던 까닭은 시민의 응집된 목소리 덕분이었다. 삶터와 광장에서 지속적으로 표출된 시민의 말이 철옹성이었던 재벌 총수를 구속하고 부정한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음이다.

이젠 그 말 속에 알알이 박혀 있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공정하고 행복한 삶과 사회의 건설이란 지향을 실현해야 할 때다. 이것이 우리 사회 지고지존의 가치로 재천명된 헌법 수호란 당위를 구현하는 길이다. 상해임시정부 법통의 계승을 비롯하여 주권재민, 법치주의, 평화통일, 경제민주화, 행복한 삶의 실현 등등, 헌법에 담긴 말들의 형성적 힘이 개인과 국가사회 모두의 차원에서 온전히 구동될 때 비로소 헌법 수호란 당위가 성취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수저’ 종류와 무관하게 저마다의 말이 존중돼야 한다. 다만 어설프게 조화를 꾀하지는 말자. 광장을 가득 메운 목소리가 결코 단일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 실현이란 큰 목표 아래 평화롭게 병존했듯이, 다양한 목소리의 평등한 공존을 도모하자는 얘기다. 곧 민주적 제 질서의 확립과 공공선의 진보, 성숙한 인문사회의 건설, 평화체제의 구축 같은 큰 목표는 공유하되, 그 안에서 상호 다름이 공존하는 양태를 실현하자는 제언이다.

물론 쉽지 않은 과업이다. 나와 많이 다르고 척지기도 한 목소리를 내 목소리와 대등하게 수용하는 건 사실 꽤나 어려운 일이다. 하여 자라면서 또 살아가면서 그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연마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제도적으로 시행되는 초등, 중등, 고등교육은 그러한 스스로의 훈련을 도와주는 역할만 해야 한다. 언론도, 종교도 마찬가지다. 지식인, 정치인 등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시민이 자율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줄 따름이어야지, 그들을 주도하거나 인도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랬을 때 헌법수호로 표방된 ‘가치 있는 말’들의 형성적 힘이 법적, 제도적 차원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일상적으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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