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빈 기자

등록 : 2017.06.10 11:00
수정 : 2017.06.10 11:00

박근혜 재판, 어수선한 법정과 판사들의 고민

등록 : 2017.06.10 11:00
수정 : 2017.06.10 11:00

“검사들은 저런 증인을 왜 부른 거야. 검사들은 편한 의자에 앉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변호인들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건 불공평하잖아.”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 재판이 있던 날. 기자석에 앉아 재판이 시작되길 기다리던 중에 앞줄에 앉은 60대 여성이 옆 사람과 나눈 대화를 들었습니다.

이분은 증인으로 나온 K스포츠재단 전 부장 노승일씨를 가리켜 ‘사기꾼’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노씨가 국정농단 폭로자이고 그로 인해 박 전 대통령이 법정까지 와 있다는 취지의 울분이었을 겁니다. 심지어 재판부를 향해 노골적 불만도 쏟아냅니다.

“이렇게 중요한 재판을 젊은 판사들이 맡고 말이야….” 주심인 김세윤 부장판사 옆에 앉은 좌배석ㆍ우배석 판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참고로 박 전 대통령 재판을 맡고 있는 형사합의22부 배석 판사들은 ‘동안’일지는 모르지만 배석 판사들 가운데서도 연차가 높은 편에 속합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박 전 대통령 재판을 두고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방청석엔 기자들과 ‘박사모’(박 전 대통령 지지단체) 회원들만 남을 것 같다.” 그만큼 지지자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입정하거나 퇴정할 때마다 지지자 30여명이 일제히 기립해 “박근혜 대통령님 힘내세요. 사랑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이런 소란 때문에 재판부는 늘 “조용히 착석해 달라”고 당부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법정 경위들이 굳은 얼굴로 지지자들을 제지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뿐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일반인 방청객은 “형사재판 법정에서 노골적으로 ‘피고인’을 응원하고, 증인들에 욕을 하면 되겠느냐”고 혀를 차기도 합니다. 결국 ‘보수성향’ 지지자들이 너무 과격한 거 아니냐는 불만까지 나옵니다.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동 법원 청사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방청권 추첨에 응모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정치인 재판엔 지지자들 법정 몰려

하지만 보수ㆍ진보 구분 없이 피고인석에 앉은 유명 정치인들을 응원하려고 지지자들이 대거 법정에 나오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오히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세가 약한 편입니다. 2013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자 수원지법 앞에는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방청권을 받으려고 새벽부터 줄을 섰습니다. 2년 뒤 대법원이 이 전 의원의 내란선동 혐의를 유죄로 확정했을 때 대법정 안에 모여든 100여명의 지지자들이 “의원님 사랑해요”를 외치다가 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2010년 3월8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리던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취재기자들은 법정 안팎이 “유세장을 방불케 했다”고 기억합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치적 동지들은 물론이고, 한 전 총리의 지지자 수십 명이 ‘백합’을 들고 한 전 총리를 맞았습니다. 법정에서 검찰이 한 전 총리에게 자금출처를 묻자, 한 지지자는 “검찰이 할 일을 떠넘긴다”며 큰소리로 항의하다가 재판부 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탄핵까지 당한 전직 대통령과 다른 정치인들을 단순 비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겠지만, 각각의 지지자들 목소리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당한 국가권력, 또는 검찰권 남용으로 피해를 봤다’는 것입니다. 특검 수사에 불만을 표시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도, ‘내란음모는 조작’이라고 주장했던 이석기 전 의원 지지자들도, ‘표적수사의 희생양’이라던 한명숙 전 총리의 지지자들도 모두 “정치검찰은 사라져라”고 외쳤습니다. 이들의 외침은 ‘검찰 수사는 부당하니 무죄’라는 프레임을 띄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자들의 바램과 달리 이석기 전 의원은 징역 9년, 한 전 총리는 징역 2년이 확정돼 수감돼 있습니다.

판사들이 남기는 당부의 말은…

판사들과 법정 경위들도 열성 지지자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을 맡고 있는 재판부는 요즘 재판에 앞서 “방청객 여러분께 주의 말씀을 드린다. 정숙을 유지해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달라. 소란 행위 시 퇴정을 당할 수 있다”는 당부와 경고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법원조직법 제61조에 따르면 법정 안팎에서 폭언, 소란 등의 행위로 심리를 방해하거나 재판 위신을 훼손한 사람에게는 재판부가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심할 경우 20일 이내 감치(경찰서 유치장ㆍ교도소 또는 구치소에 유치)도 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재판에서 소란행위를 하는 지지자들에게 쉽사리 과태료나 감치 조치를 내리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사건을 예단하거나 편견을 갖고 있다는 오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정치인 사건의 경우 지지자들이 폭력사태 등 물리력을 쓰지 않는 이상 최대한 원만하게 타이르는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합니다. 다만 판사들은 지지자들에게 이런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법원의 최종 판단인 선고결과에 대해선 수긍해 주기를 바랍니다.” 10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당일 별다른 소란 없이 재판이 마무리되길 기대해 봅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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