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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알프레트 아이젠슈테트(12.6)

입력
2017.12.06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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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아이젠슈태트가 촬영한 1933년의 괴벨스
알프레트 아이젠슈태트가 촬영한 1933년의 괴벨스

시사 사진잡지 ‘라이프’를 통해 수많은 포토저널리스트들이 탄생했지만, 그 중에도 알프레트 아이젠슈태트(Alfred Eisenstaedt)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라이프’가 탄생한 36년 11월 첫 호부터 주간지 시대를 마감한 72년 말까지 전속 작가(저널리스트)로 일하며 90여 편의 잡지 표지를 포함해 2,500 컷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의 역사는 사실 그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1898년 12월 6일 서프러시아 디르샤우(Dirschau, 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부유한 백화점 경영자였다. 사진에 매혹된 그에게 숙부가 카메라(코닥 폴딩카메라)를 선물한 게 14세 무렵이었고,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독일의 사진 통신사(PAPB)에 작품을 팔기 시작한 건 20세이던 1928년부터였다. 그 사이 1차대전이 있었고, 그는 독일 육군 포병으로 참전(1916~18), 부상을 입고 제대했다. 동시대 포토저널리스트들에게 전후 재건기와 전체주의의 발흥, 2차 대전과 냉전, 산업화ㆍ양극화로 이어진 시대의 비극적 역동성은 더 없는 활동무대였을 것이다.

그는 29년 이후 AP통신과 잡지 ‘일러스트리에르테 자이퉁’ 등에 적을 두고 30년대 유럽, 특히 나치와 파시즘의 성장사를 기록했다. 히틀러가 수상이 된 1933년, 그가 찍은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사진은 여러모로 징후적이었다. 국제연맹 15차 총회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의 한 호텔 뜰에 비서와 통역사와 함께 있던 괴벨스는 특유의 미소로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35㎜ 라이카 카메라를 든 아이젠슈태트를 보자마자 매섭게 노려봤다고 한다. 그는 움찔하며 외면하는 대신 맞서듯 카메라를 들이댔다. 나치가 유대인 탄압을 노골화하던 35년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정착했고, 이듬해 라이프의 창간발행인 헨리 루스의 제안에 응했다.

아이젠슈태트는 주로 작은 라이카 카메라로 플레시 없이 사진을 찍었다. ‘수병의 키스’란 제목으로 유명한 45년 8월 14일 타임스퀘어 전승기념일 사진도 그의 순발력이 포착한 작품이었다. 국제적 거물 정치인과 스타 연예인 등의 사진을 찍었던 그는 “모델들이 조그만 카메라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 보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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