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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나 잡던 유망주, 83위로 US오픈 우승 대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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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나 잡던 유망주, 83위로 US오픈 우승 대반란

입력
2017.09.1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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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론 스티븐스가 10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US오픈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슬론 스티븐스가 10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US오픈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지금 당장 은퇴해도 여한이 없다.”

테니스 오픈 시대(프로ㆍ아마 통합)가 출범한 1968년 이후 가장 낮은 랭킹으로 US오픈 여자단식타이틀을 거머쥔 슬론 스티븐스(24ㆍ랭킹 83위ㆍ미국)가 시상식에서 남긴 말이다. 지난해 8월 당한 오른발 피로골절 부상 때문에 11개월 동안 코트를 떠나야 했던 그는 “수술대에 올랐을 때 만해도 내가 메이저 대회 챔피언이 되기는커녕, 다시 100위권에 재진입 할 수 있을지조차 몰랐다”며 감격해 했다.

스티븐스는 10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대회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매디슨 키스(22ㆍ16위ㆍ미국)를 2-0(6-3 6-0)으로 완파하고 정상에 올랐다. 턱없이 낮은 랭킹 탓에 그는 이번 대회에 시드도 못 받고 출전했지만 우승을 따내며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시드는 랭킹 상위권 선수들이 대회 초반에 맞대결을 벌이지 않도록 1번부터 32번까지 부여하는 번호로 1, 2번 시드는 결승에서 맞대결을 벌이게 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스티븐스는 2009년 킴 클레이스터르스(벨기에) 이후 두 번째로 이 대회에서 시드 없이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 스티븐스가 트로피를 차지하리라고 전망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해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부상을 당해 11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36위였던 랭킹은 끝도 없이 추락했고, 지난달 초 까지만 해도 957위에 불과했다. 지난 7월 윔블던을 통해 복귀전을 치렀지만 1회전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이어 출전한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 시티 오픈에서도 첫 판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출전한 두 번의 투어 대회에서는 모두 4강까지 오르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재기를 향한 강한 집념이 이날 스티븐스의 우승을 만들어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그의 코치인 카마우 머레이는 지난 4월 스티븐스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고 한다. 코트 복귀 준비를 끝냈으니 다시 훈련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피로 골절로 수술대에 오른 지 3개월만이었다. 머레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5월 그들은 코트에서 만났고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서 스윙연습을 시작했다. “달리기는 무리”라며 의사가 허락하지 않자 앉아서라도 스윙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스티븐스는 부상 이전부터 윌리엄스 자매를 이을 차세대 재목으로 인정받아왔다. 그가 20세이던 2013년 호주오픈 8강에서 최강자 서리나 윌리엄스(36ㆍ미국)를 물리친 장면은 테니스계에 큰 충격을 선사했다. 스티븐스는 그 해 윔블던에서도 8강에 진출하며 ‘포스트 윌리엄스 자매’ 시대를 열어젖힐 선두 주자로 꼽혔다. 이번 대회 4강에서도 비너스 윌리엄스(37ㆍ미국)를 2-1(6-1 0-6 7-5)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카마우 머레이 코치는 이날 스티븐스의 우승 직후 “그는 늘 성실히 훈련에 임했기 때문에, 언젠간 기량을 회복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금방 다가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날 키스의 마지막 샷이 네트에 걸리자 우승을 확정 지은 스티븐스는 혼자 기쁨을 누리는 대신 함께 싸워준 상대방에게 달려갔다. 주니어 시절부터 ‘절친’으로 지내온 둘은 부둥켜 안고 한참을 속삭이며 서로를 다독였다. 키스 역시 부상으로 두 번이나 코트를 떠난 경험이 있었기에, 재활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잘 알고 있었다. 키스는 “오늘 나를 꺾은 상대가 스티븐스라 너무 기쁘다”며 울먹였고, 스티븐스는 “테니스에 무승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스티븐스는 오는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서 개막하는 WTA투어 KEB하나은행ㆍ인천공항 코리아오픈 출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오픈 챔피언 옐레나 오스타펜코(20ㆍ12위ㆍ라트비아)까지 더해, 올 해 그랜드 슬램 우승자 2명의 맞대결이 한국에서 성사될 지 관심을 모은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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