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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의 멍멍 꿀꿀 어흥] 사람 좋아하는 시골 백구, 개장수 나타날까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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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의 멍멍 꿀꿀 어흥] 사람 좋아하는 시골 백구, 개장수 나타날까 불안

입력
2018.07.20 14:00
수정
2018.07.20 17:2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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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개ㆍ고양이 도살 금지법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에서 동물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대통령의 반려견 ‘마루’의 친구들을 살려달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개ㆍ고양이 도살 금지법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에서 동물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대통령의 반려견 ‘마루’의 친구들을 살려달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촌동네로 이사 오니 세 종류의 개들을 마주치게 된다. 유기견이었던 달봉이는 옆집 아저씨를 만나 ‘견생 역전’을 했다. 자녀들이 출가해 적적한 아저씨에게 달봉이는 막내둥이 같은 존재다. 서로 위로가 되는 둘을 보면 ‘이것이 반려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구는 허름한 농가의 마당에 산다. 낡은 판자였던 백구의 집이 플라스틱으로 얼마 전 ‘신축’ 된 것을 보면 밥 주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백구가 사람과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백구는 1m 목줄에 묶여있다. 안쓰러워 바라보면, 백구는 ‘컹’ 한번 짖고는 이내 꼬리를 흔들며 쳐다본다. 사람과의 교감이 그리운 것이다. 고의적인 학대는 아니지만 추위와 더위와 외로움에 방치됨으로써 학대당하는 개들이 시골에는 많다. 가끔 돌아다니는 개장수가 백구를 데려갈까 불안하다.

누렁이는 어느 주민의 ‘부업’의 수단으로 비좁은 뜬장에 산다. 산책하는 다른 개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누렁이는 내가 다가가면 착한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덩치만 컸지 귀여운 누렁이는 달봉이와 다를 바 없고, 대통령의 개 ‘마루’와도 다를 바 없는데, 어째서 식용으로 취급되는 걸까.

한국에서 개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동물보호법에서는 ‘반려동물’이지만, 축산법에서 ‘가축’에 해당하고, 축산물위생관리법에서는 ‘축산물’에 해당되지 않는다. 업자들은 이 혼돈을 틈타 개를 식용으로 이용해왔다. 무허가 농장을 제외한 전업농장만 3,000여개. 한국은 식용으로 대규모 개 농장을 운영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개들은 엄청나게 더럽고 열악한 철장에서 음식쓰레기를 먹고 사육된다. 매년 이렇게 사육되는 개 100만 마리가 질질 끌려 목이 졸리거나, 두들겨 맞거나, 전기봉을 입에 문 채 죽어간다.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이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제공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이 철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제공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권 변호사단체 PNR이 주관한 ‘개식용 종식 입법 국회토론회’에서 개고기 잔류 항생제 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이혜원 수의사가 총 93개의 샘플을 대상으로 9가지의 항생제 성분을 조사했더니 60개에서 1개 이상의 항생제 성분이 검출됐다. 5개의 항생제가 검출된 개고기도 있었다.

그렇다고 개고기를 합법화하면 복지와 위생이 개선될까? 수익성을 위해 대량 밀집 사육을 하는 농장들을 보면 미리 답을 얻을 수 있다. 구제역 살처분 후, 고기의 근원이 궁금했던 나는 카메라를 들고 돼지와 닭을 사육하는 농장에 직접 찾아갔다. 닭들은 날개도 펴지 못하는 닭장에서 밀집 사육되고 있었고 축사는 악취와 분뇨로 가득했다. 돼지농장엔 온갖 약병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어미 돼지들은 몸을 돌릴 수도 없는 감금틀에 갇혀 있었다. ‘믿을 수 없이 불결하고 잔인한’ 축산 현장들을 직접 본 이후, 나는 지금까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식용을 종식시킬 법안 3개가 발의됐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소, 돼지, 닭에 대한 공장식 사육도 종식해야 할 마당에,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까지 굳이 잔혹 리스트에 추가해야 하겠는가. ‘식용 개’는 없다. 인간의 오랜 친구, 개가 있을 뿐이다.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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